'지리산인' 제20호(2016.05) - <지리산칼럼> 생태적 감수성으로 지리산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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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감수성으로 지리산 다시 보기
소병철(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HK교수)
독일 출신의 세계적 알피니스트 한스 카멀란더(Hans Kammerlander)는 그의 책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에서 자신이 알피니즘의 역사에 남긴 기록적 발자취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17시간 만에 남미의 고봉 세로토레 등ㆍ하산 완료, 17시간 만에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후 스키 활강으로 하산, 24시간 만에 4개의 가파른 능선으로 마터호른 4회 등정, 반나절 만에 난이도 Ⅵ의 토파나 산군 1,000m 암벽 단독 등척, 6주 만에 남티롤 산악지대의 300개 고봉 등정, 45분 만에 16명의 클라이머 추월 후 2시간 20분 만에 치마 스코토니의 스코야톨리 루트 완주 등의 ‘신기록’들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전 세계의 알피니스트들이 등정을 꿈꾸는 8,000m 대 고봉들을 단독으로 등반한 ‘성공적 8000m 레이서’로서의 이력을 자랑한다. 암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클라이머가 자신을 추월하는 그에게 자일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에도 그는 ‘단독 초등’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노라고 말한다. 그에게 고산의 정상은 ‘투쟁’과 ‘공격’과 ‘정복’과 ‘승리’의 대상이며, ‘프리 솔로’(free solo)로 이룬 등반 속도의 단축은 그의 승리를 최고로 빛내 줄 배경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난이도 Ⅹ의 알파인 암벽을 자일도 없이 솔로로 단시간에 오르는 영웅적 클라이머가 되기를 평생 동안 꿈꿨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꿈에서 우리는 험준한 산악을 정복과 순육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알피니스트의 전형적 산악 표상을 여실히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한때는 특출한 영웅적 모험가의 높은 꿈이던 그것이 오늘날에는 한국의 전역에 무수히 난립하는 ‘산악회’들의 영혼으로 소박하게 평준화되었다. 특히 지리산과 같은 큰 규모의 산에 주말마다 몰려드는 등산인파는 수용력의 한계를 초과한 속도전 식 과밀 등정으로 탐방로의 답압 가중, 침식과 세굴, 뿌리 노출과 나지화, 동식물의 포획과 채취, 서식지 파괴, 소음 공해, 추월 스트레스와 같은 생태적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때로 상업적 동기에서 대두되는 케이블카 설치론은 ‘등정의 컨베이어 벨트’에 대한 알피니즘적 환상을 관광 마케팅의 수단으로 동원하며 대규모의 ‘합법적’ 환경파괴에 대한 일반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알피니즘의 관행이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도전 식의 ‘등정’과 ‘답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지리산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할 문명사적 전환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지리산의 자연을 심미적 경이로 체험하는 성찰적 가치감으로서의 생태적 감수성이다. 그러한 생태적 감수성을 품고 지리산을 걷는 사람은 자연의 ‘정복’와 ‘순육’을 추구하는 속류 알피니즘의 에토스를 극복하여 스스로의 발걸음을 생태적 지속가능성의 방향으로 견인해 나갈 것이요, 지리산의 장소성을 깊이 있고 여유롭게 성찰하는 가운데 길에서 만나는 자연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며 인근 마을의 생활사를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성숙의 노정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이 담보되도록 지리산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에 지리산과 교감할 생태적 감수성을 올려놓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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