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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제18호(2015.11) - 중국 여산 학술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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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2,165회 작성일 15-11-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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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문화연구단 중국 여산 학술 답사>

 

여산객의 여산진면목

 

2015817()부터 21()까지 45일 동안 본 연구단에서는 단장님 이하 아홉 사람이 중국 강서성에 있는 여산에 다녀왔다. 이번 길은 중국에서 여산이 차지하고 있는 지리적 문명적 위치가 지리산이 한반도 문명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가장 닮았다고 해서 이루어진 거사였다. 즉 여산을 다녀와서 참가자 전원이 각자 글을 한편씩 써서 책을 한권 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일 김해공항에 모인 일행들 얼굴을 보니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대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짐이 마음 속에 하나씩 얹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정은 상해를 거쳐 남창을 지나 여산에 올랐다가 갔던 길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여산에서는 여산 북쪽 구강시에 있는 구강학원의 여산연구중심 연구자들과 만나 산 연구자들끼리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으로 끈끈한 연대를 갖기로 다짐했다. 11월에 있을 동아시아산악문화연구회 국제학술대회에 여산학원 분들이 발표하기로 했다하니 산동성 태산학원에 이어 한중 산 연구자들끼리 이루어낸 연대의 새로운 장이라 할 만하다.

 

여산은 듣던대로 여러모로 지리산과 닮았다. 중국 남방에 위치하며 백록동서원과 동림사라는 유교와 불교의 중심지가 있고 여산노모라는 여성 도교신의 상주처인 점이 그러했다. 장강과 파양호라는 큰 물줄기로 둘려있고 남방 문화와 북방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라는 점도 그러했다. 일행의 숙소였던 근 200호에 달하는 산상 마을이 20세기 전반기 서양 선교사 휴양지촌이었다는 점도 그러했다.

 

특히 여산에서 놀랐던 점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들이 여산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이백, 소동파, 백낙천 등 문인과 주희, 강유위 등 사상가와 주원장, 증국번, 장개석, 주은래 등 정치가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명인들이 여산 여기저기에서 마구 튀어나왔다. 이들 모두가 여산에 직접 올랐고 일생 중 주요 활동 무대 중 하나가 여산이었다. 수천년 중국의 정화라할만한 인물들을 그렇게도 반하게 만든 여산진면목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날 상해를 거쳐 남창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일행의 분위기는 그저 그랬다. 1927년 남창봉기에서 강서소비에트와 대장정으로 이어지는 현대 중국의 출발지가 되는 땅, 당나라 때 이발의 그 유명한 등왕각서가 지어진 곳을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일행의 분위기가 서서히 살아난 것은 여산에 올라 산상 숙소에 도착해서 식사 때 나온 개구리 요리를 먹으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전체 일정에서 식사는 모두 호평을 받았다. 여행에서는 먹는 것이 좋으면 모두 좋은 법이다.

둘째날 산상에 올라 백낙천의 화경(花徑)을 구경하면서 일행의 분위기는 급전했다. 그 멋진 길과 호수 그리고 미남 백낙천의 동상에 다들 반한 모습이었다. 이후 2~3km 정도의 선인동 산길을 걸으며 1937년 장개석이 주은래와 마주앉았던 담판대와 도교 사원과 원숭이 등을 구경하고 나와서는 모두 시끌벅쩍하고 환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셋째날 장개석과 송미령의 미려별장을 다녀와서는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일행은 그때부터 고대부터 쭉 그러했듯 여산에 반한 여산객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사실 이번 길에 여산은 매우 불친절했고 자신의 진면목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둘째날 오후 선인동을 볼 때는 골짜기에서 구름이 피어올라 여산의 자랑거리인 절벽과 깊은 골짜기를 보지 못했고 셋째날은 오후에 비가 내려 삼첩천 폭포를 보기로 했던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은 그래도 별 동요가 없이 쭉 즐거워했다. 대체 여산이 그들 마음 속에 무엇을 주었기에 저렇게 되었을까. 아마 세계와 삶에 대한 무언가 큰 깨달음을 주었지 않나 싶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내년에 일행이 쓸 여산관련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날 백록동 서원과 동림사에서는 전공과 관련된 곳이라서 다들 재미있어 했다. 동림사는 동진 때 혜원과 도연명, 육수정의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가 얽혀 있는 곳이고, 백록동서원은 유명한 주자의 백록동규로 조선 서원의 전범 역할을 한 곳이었다. 지리산

권의 유불도 삼교와 관련하여 함께 생각해볼 부분이 매우 많은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일정이 너무 여산 위주로만 짜여져 있어 여산을 둘러싼 파양호와 장강을 함께 보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파양호는 명 태조 주원장이 진우량을 격파하고 명 건국의 토대를 세운 파양호 대전의 현장이고, 증국번의 상군을 태평천국의 익왕 석달개가 전멸시킨 고전장이다. 여산 북쪽의 구강시는 <수호지>에서 송강이 귀양와서 반시를 쓰고 흑선풍 이규와 낭리백도 장순 등을 만난 곳이며, 백낙천이 강주사마로 좌천되어 와서 달밤에 여인의 비파를 듣고 소매에 눈물이 가득했던 비파행의 가슴뛰는 현장이다. 그곳을 못보고 온 아쉬움에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눈 돌리니 어느새 두달이 지났다. 그날 여산객 모두가 한 짐씩 부려놓고 또 한 짐씩 가져온 여산진면목은 무엇이었고 지금은 무엇으로 변해있을까. 오늘 마침 보름이라 지리산엔 달이 밝다. 그날 여산의 구름과 비는 오늘밤 어드메쯤 쉬고 있을까. 못보고온 구강의 달은 지리산의 달과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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