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남전사(藍田祠, 忠孝祠,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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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사
(藍田祠, 忠孝祠,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 338)
① 건립연도 : 1786년(정조 10)
② 사액연도 : 미사액
③ 배향인물 : 왕득인(王得仁), 왕의성(王義成), 왕지익(王之翼), 이원춘(李元春), 한호성(韓好誠), 죽와(竹窩) 이정익(李廷翼), 양응록(梁應祿), 고정철(高廷喆), 오종(吳琮)
④ 변천 및 현황 : 이 사우는 원래 왕지익을 배향하기 위해 1786년 세워졌다. 이때의 명칭은 남전사였다. 그 후 정유재란 때 구례현감으로서 왜적을 맞아 싸우다 순절한 이원춘을 함께 배향하자는 논의가 공론화되고 장소도 보다 더 넓은 현재의 광의면 지천리 지상마을로 옮기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1802년(순조 2) 사우와 전사청을 완공하여 그해 가을에 왕지익과 이원춘의 위패를 봉향하였다. 1803년엔 강당과 고직사를 건립하여 사우로서의 제도와 규모를 갖게 되었는데, 이때 편액을 충효사(忠孝祠)라고 하였다. 1804년 왕득인과 왕의성에게 증직 교지가 내려지고, 1812년에는 이들에 대한 정려까지 내려지면서 이들과 함께 정유재란 때 의병을 조직하여 구례 석주관(石柱關)에서 왜적을 무찌른 소위 ‘석주관칠의사(石柱關七義士)’에 대한 선양 움직임이 일어나자, 1814년(순조 14) 이 사우에 이정익 ․ 한호성 ․ 양응록 ․ 고정철 ․ 오종 등이 추가 배향되었다. 그러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 그 후 칠의사(七義士)의 위패는 ‘석주관칠의사단’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충효사(구 남전사) 자리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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