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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고시가 절명시(絶命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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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018회 작성일 11-08-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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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시(絶命詩)

저자: 황현(黃玹:1855~1910)

장르: 한시, 칠언절구

발표연도: 1910년

황현(黃玹)

亂離滾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만 희어졌구나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말연) 몇 번 목숨을 버리려 하였건만 그러질 못하였네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하지만 오늘만은 진정 어쩔 수가 없으니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

妖氣掩翳帝星移(요기엄예제성이) 요사한 기운 뒤덮어 천제성(天帝星)도 자리를 옮기니

九闕沈沈晝漏遲(구궐침침주루지) 구중궁궐 침침해라 낮 누수(漏水)소리만 길고나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부유) 상감 조서(詔書) 이제부턴 다시 없을 테지

琳琅一紙淚千絲(림랑일지루천사) 아름다운 한 장 글에 눈물만 하염없구나.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악 해수 다 찡기는 듯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삼천리가 이미 영락되다니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밤 등불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이승에서 지식인 노릇하기 정히 어렵구나.

會無支廈半椽功(회무지하반연공) 일찍이 조정을 버틸만한 하찮은 공도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부시충) 그저 내 마음 차마 말 수 없어 죽을 뿐 충성하려는 건 아니라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기껏 겨우 윤곡(尹穀)을 뒤따름에 그칠 뿐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당시 진동(陳東)의 뒤를 밟지 못함이 부끄러워라.

매천 황현은 조선말기 절의를 지킨 우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나 34세에 생원회시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러나 벼슬을 마다하고 구례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쳤고 개화 운동에 일찍 눈을 떠 근대식 학교를 세우는 등 서양을 이기기 위해서는 서양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껴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겼다. 그의 나이 56세인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사후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현재 선생의 유품과 고서 등이 매천사당 부지 내에 위치한 매천유물전시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 중 《매천집》《매천야록》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제1권으로 발간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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