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동 구안실 > 구례

본문 바로가기

구례

고시가 만수동 구안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294회 작성일 11-08-17 20:14

본문

만수동 구안실

구례 만수동은 매천 황현이 1886년부터 1902년 구례 광의면 월곡(月谷)마을로 이사하기 전까지 생활하던 곳이다. 만수동에서 생활하던 시절을 흔히 은거시기라고 하지만, 오히려 이 시기는 문학적으로 더욱 원숙해지고 역사가로서의 면모는 더욱 철저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명한 저술인 『매천야록(梅泉野錄)』과 『오하기문(梧下記聞)』과 같은 대표적인 저술이 이 시기에 시작되거나 완성되었고, 후진 교육에도 전념하였다. 또한 그가 지은 1,051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중 40여 수만을 제외하고 모두 만수동에서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매천학(梅泉學)’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황현은 서른 하나의 나이에 동생 황원(黃瑗, 1870-1944)의 일가를 포함한 식솔들을 이끌고 백운산 남서쪽 만수동에 정착하였다. 이곳에 정착한 후 그는 매화나무를 심고, 개울 아래에 옹달샘을 파서 식수를 해결하였으며, 초옥(草屋) 몇 간을 지었다. 그리고 1890년에 서재인 구안실(苟安室)을 지었으며, 이 외에도 삿갓모양의 일립정(一笠亭)을 지었다. 구안실과 일립정을 매천이 월곡으로 이사한 뒤에 함께 불탔다고 한다. 지금도 만수동에는 황현이 심었다는 고매(古梅) 몇 그루가 봄철이면 그윽한 향을 내뿜고 있으며, 매화샘에는 맑은 물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그가 공부한 구안실이나 일립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어 빈터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수년전까지 만수동에는 구안실 아래쪽에 ‘운산서실(雲山書室)’이란 제호(題號)가 붙은 초라한 민가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은 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2001년 겨울에 헐어버리는 도중 잔해더미 속에서 ‘삼호정상량문(三乎亭上樑文)’이 발견되었다. 이 상량문에 의해 이 집이 황매천의 유지(有址)이며, 삼호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호정의 명칭은 일제 강점기에 붙여지고 어느 때인가 다시 운산서실이라는 제호가 붙게 된 듯한데, 어쩌면 이곳이 일립정의 유지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 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중평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국립순천대학교지리산권문화연구원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한국통신로 142-24 T. 061-750-6343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255 E2 기초교육관 T. 061-750-5440
Copyright © 국립순천대학교지리산권문화연구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