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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구례화엄사화엄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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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433회 작성일 11-08-0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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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화엄사화엄석경
 

종 목 보물 제1040호
명 칭 구례화엄사화엄석경(求禮華嚴寺華嚴石經)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석각류
수량/면적 8980점외일괄
지정(등록)일 1990.05.21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 대 고려시대

석경(石經)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 것인데, 화엄석경(華嚴石經)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의 돌에 새긴 것이다.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에 각황전을 세우고 이곳에 화엄석경을 보관하였다. 각황전의 안쪽 벽에는 현재 그림이 걸려 있으나, 원래는 여기에 화엄석경이 벽을 이루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경에는 네모진 돌들을 서로 맞추어 끼웠던 듯 모서리에 연결을 위한 홈이 파여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석경들이 파손되었고, 색깔도 회갈색 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파손된 것을 모아 지금은 약 9천여 점이 남아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로 최치원이 정강왕 2년(887)에 쓴 쌍계사 진감국사비문과 비슷한데, 당시의 글씨체를 잘 보여주고 있어 희귀한 석경의 대표적인 예로 주목되고 있다.

이 화엄석경은 우리나라 화엄종 사찰의 상징적 유물로서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후기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석경(石經)이란 경전(經典)의 원문(原文)을 석판(石板)에 새긴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의 화엄석경잔편(華嚴石經殘片)과 경주(慶州) 창림사지(昌林寺址)부근에서 출토(出土)된 법화석경(法華石經) 등이 있다. 화엄석경(華嚴石經)은 통일신라(統一新羅) 문무왕대(文武王代)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화엄십찰(華嚴十刹)을 불교전교(佛敎傳敎)의 도량(道場)으로 삼으면서 왕명(王命)을 받아 화엄사(華嚴寺)에 장육전(丈六殿)(현(現) 각황전(覺皇殿))을 건립(建立)하고 후불벽(後佛壁)을 판석(版石)에 화엄경(華嚴經)을 새긴 석판(石板)으로 둘렀다고 전해지는 유물(遺物)들이다. (구례읍지(求禮邑誌), 봉성지(鳳城誌) : 문무왕시(文武王時) 국사의상승왕명이석판각화엄경팔십권류우본사(國師義湘承王命以石板刻華嚴經八十卷留于本寺))

이들 석경(石經)의 자체(字體)는 해서체(楷書體)로 최치원(崔致遠)의 사산비중(四山碑中) 하동(河東) 쌍계사(雙磎寺) 진감국사비문(眞鑑國師碑文)과 닮았으며 3∼4종류의 자체(字體)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석경(石經)에 사용(使用)된 석재(石材)도 청석(靑石) 계통을 포함하여 3∼4종류에 이르고 있다.

기록(記錄)에 의하면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왜군(倭軍)이 각황전(覺皇殿)을 방화(放火)할 때 석경(石經)들이 파괴(破壞)되었다고 하며 색깔도 화재(火災)로 변색된 듯 회갈색(灰褐色) ·대홍색(帶紅色) ·암회색(暗灰色)으로 작은 파편의 석경은 문자(文字)가 5∼10여자, 큰것은 100여자 이상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석경(石經)에는 장방형(長方形)의 판재(版材)를 서로 맞추어 끼웠던 듯 모서리에 연결을 위한 흠이 파여 있으며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있는데 전설(傳說)로는 신라명필(新羅名筆) 김생(金生)(711∼791)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실년대(實年代)는 신라하대(新羅下代)로 추정된다.

이 화엄석경(華嚴石經)은 국내(國內) 화엄종찰(華嚴宗刹)의 상징적(象徵的)인 유물(遺物)로서 비록 파편(破片)들이긴 하나 통일신라하대(統一新羅下代)의 불교사(佛敎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불경(佛經)·서체(書體) 등(等)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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