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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유적 매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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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26회 작성일 11-08-0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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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사



 

종 목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7호
명 칭 매천사(梅泉祠)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4.02.29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672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한말의 순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고,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김택영과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생전에 살았던 곳에 그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55년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매천사는 조선말기의 대학자요, 시인이자 우국열사인 매천 황현(梅泉 黃玹)을 배향한 사우로 1955년에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터에 그의 후손과 지방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황현(1855~1910년)의 본관은 장수이며 자는 운경, 호는 매천으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며 시묵(時默)의 아들로 광양 봉강면 서석촌에서 태어나 구례로 이주하였다. 특히 시문에 능하여 고종 22년(1885)에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과 관리들의 부패상을 개탄하고 관직에 나가기를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하여 후학의 가르침에 힘썼다. 1905년에는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한일합병이 되자 국치(國恥)를 통분하여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고관 강위, 영재 이건창, 창강 김택영, 무정 정만조 등과 교류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뛰어난 재질을 가진 문장가였으며 황현, 이건창, 김택영을 「한말삼재(韓末三才)」라 일컫는다.

현재 매천사에는 선생이 쓰시던 유물과 고서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중 『매천집』, 『매천야록』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 제1권으로 발간되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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