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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신재 최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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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168회 작성일 11-08-0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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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 최산두 (1483년(성종 14)~1536년(중종 31))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82년(성종13년) 4월 10일 봉강면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초계. 자는 경앙, 호는 신재·농중자이며, 아버지는 한성판윤 최한영이며, 어머니는 교리 한경회의 딸이다. 김종직·김굉필을 사숙하였다.

6세 때 글을 배우러 다니다가 하루는 비를 맞고 밤길에서 도깨비를 만나 문답을 나누었는데, 도깨비가 그를 ‘사인’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15세 때 《통감강목》 80권을 가지고 석굴에 들어가서 2년간 수천번을 읽고 나오니 나뭇잎이 모두 강목의 글자로 보였다 한다.

18세에 상경하여 조광조·김정·김안국 등과 교유하니 당시 사람들이 ‘낙중군자’라 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 진사가 되어 25세에서 30세까지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여 도덕·문장으로 이름이 나자, 김인후·유희춘 등이 찾아와서 글을 배웠다.

1513년(중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14년 홍문관저작, 1516년 박사로 승진하고 이듬해 홍문관수찬·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518년 다시 수찬이 되고 보은현감이 되었다. 승정원에서 《성리대전》을 강할 사람 26인을 선발하는데 그가 첫째로 뽑혀 호당에 들어갔다.

1519년 이조정랑·장령·사인으로 승진되었으나 기묘사화로 동복에 유배되었다가 1533년 풀려나온 뒤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문장에 뛰어나 유성춘·윤구와 함께 ‘호남삼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신재집》이 있다. 동복의 도원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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