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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건 연곡사 고광순 의병부대 전투 및 순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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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087회 작성일 11-09-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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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 고광순 의병부대 전투 및 순국지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 연곡사)

1907년 10월 고광순 의병부대가 장기항전을 펼치기 위해 주둔하다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순국한 곳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은 본관이 장흥, 자는 서백(瑞伯), 호는 녹천(鹿川)으로, 초명은 광욱(光旭)이었다. 전남 창평에서 출생하여 한학을 수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내리자 기우만이 이끄는 장성의병에 참가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그는 1906년 6월 최익현·임병찬 등이 일으킨 태인의병에 가담하려 했으나 최익현과 이른바 12의사는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남원의 양한규 의병부대와 함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이었으나, 이미 양한규 의병부대의 패진으로 뜻을 이루지 않았다. 또한 그는 기우만·양회일·백낙구 등과 거사를 계획했으나 여의치 못하였다.
이에 고광순은 독자적으로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여 1907년 말 창평 저산의 이씨 제각에서 창의의 기치를 세웠다. 마침 전북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동신과 내장산에서 만나 지리산에서 장기항전을 벌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그는 의병을 이끌고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들어가 장기항전을 하기 위한 의병항쟁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탐지한 일본군의 급습을 받아 1907년 10월 17일 그를 비롯한 수십명의 주요 장졸들과 함께 연곡사에서 전사했다. 이들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구례군민들은 1958년에 고광순이 순국한 연곡사 경내에 순절비를 건립하여 그의 숭고한 의병활동을 기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08년 당시 연곡사는 일본군이 소각해버렸으며 그 후 연곡사 등의 건물이 신축되어 당시의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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