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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박봉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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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234회 작성일 11-09-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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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술


1922∼1989. 판소리 명창.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기예능보유자. 호는 청운(靑雲). 전라남도 구례 출생. 판소리 명창 만조(萬朝)의 넷째 아들이며 역시 판소리 명창 봉래(奉來)의 아우이다.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중방리에서 박만조의 다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동향 출신의 명창 송만갑(宋萬甲)과의 오랜 교류로 판소리에 조예가 깊어 소리를 가르치던 아버지와 송만갑의 제자였던 맏형 박봉래(朴奉來)의 영향으로 7세 때 판소리에 입문했다. 그후 13세 때부터는 동편제의 대가인 명창 이선유(李善有)·송만갑·유성준(劉成俊) 등에게 배웠다. 특히 그가 살던 곳이 송만갑의 집이나 유성준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어 자연스럽게 송만갑으로부터 이어지는 동편제의 소리를 익힐 수 있었다.

'아이 명창'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어릴 때부터 소리를 잘하던 그는 명창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16세를 전후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 뒤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이동백(李東伯)·김창룡(金昌龍) 등과 함께 판소리를 가르치던 송만갑을 찾아가 1년 정도 소리를 공부를 하였다. 이 시기에 변성기를 맞은 그는 소리를 너무 심하게 닦다가 목이 상하게 되었다. 소리가 탁해지고 상청이 나오지 않게 되자, 주위에서 독공을 권해 지리산과 쌍계사 등에 칩거하며 공부를 했는데, 오히려 성대가 상해 목이 꺾이고 말았다. 이후 잠시 고향에서 쉬기도 했으나 곧 명창 임방울(林芳蔚)을 따라 일본 공연에 참가하고, 유성준의 가르침을 받았다. 광복 후 정읍의 정악원과 순천의 국악원, 부산의 국악원 등에서 소리 선생으로 제자를 가르치며 좌절과 실의를 겪기도 한 그는 칠전팔기의 자세로 소리공부를 계속해 비록 목은 꺾였어도 소리공력으로는 그에 맞설 소리꾼이 없을 정도라는 찬사를 듣게 되었다.

1953년부터 순천에서 오랫동안 국악원 판소리 사범으로 제자를 가르친 것을 비롯하여, 목포·전주·군산·부산 등지를 전전하며 국악원 사범으로 있었다. 어느 명창보다 순수한 동편제 판소리를 계승하였고 판소리 다섯마당을 다 불렀는데, 특히 <흥보가>·<수궁가>·<적벽가>에 출중하였고, <춘향가>도 더러 공연하였으나 <심청가>는 그리 능하지 못하여 공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1961년 신세기레코드사에서 판소리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음반취입을 했으며, 1970년 거처를 서울로 옮긴 후 더욱 활발히 공연활동을 펼쳤다. 그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을 모두 익혔는데, 그 중에서도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에서 능한 솜씨를 보였다. 특히 《수궁가》는 전통적인 동편제의 더늠을 모두 간직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왕성한 공연활동을 펼치며 제자양성에 힘쓰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1989년 세상을 떠났다

문하에서 송순섭(宋順燮)·김일구(金一求)·안숙선(安淑善) 등 여러 명창이 나왔는데, 송순섭·김일구가 그를 계승하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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