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양응록 [梁應祿,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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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응록 [梁應祿, ?~1597]
이칭별칭 | 자 영국(榮國), 호 상촌(橡村) | 유형 | 인물 |
시대 | 조선 | 출생-사망 | 미상 ~ 1597년(선조 30) |
성격 | 의병장 | 출신지 | 구례 |
본관 | 남원(南原) | 관련사건 | 정유재란 |
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활약한 의병장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라도 구례에서 왕의성·이정익·한호성·고정철·오종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적을 베고 전사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자는 영국(榮國)이고, 호는 상촌(橡村)이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7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대군을 이끌고 전라도 지역으로 침범하여 구례의 석주관(石柱關)에 도달하였다. 이에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은 수적 열세를 느끼고 남원(南原)으로 가서 명장 양원(楊元)과 합세하였으나, 남원이 함락되어 아군은 전멸하고 이원춘도 전사하였다. 이 틈을 타서 왜군은 구례에 들어와 양민을 학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구례의 선비 왕득인(王得仁)이 석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켜 싸웠으나 곧 순절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양응록이 왕의성(王義成)·이정익(李廷翼)·한호성(韓好誠)·고정철(高貞喆)·오종(吳琮)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석주진에 주둔해 있던 왜군을 공격하여 많은 적을 죽였으나 왜군의 연이은 공격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1804년(순조 4) 지평에 추증되고, 구례의 칠현사(七賢祠)에 배향되었다. 사적 제106호인 석주관칠의사묘(石柱關七義士墓)는 양응록을 비롯한 왕득인·왕의성·이정익·한호성·고정철·오종을 모신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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