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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인물 왕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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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91회 작성일 11-09-21 21:09

본문

왕득인

이칭별칭

호 남전(藍田)

유형

인물

시대

조선

출생-사망

1556년(명종 11) ~ 1597년(선조 30)

성격

의병

출신지

구례

본관

개성(開城)

관련사건

석주관 전투

1556(명종 11)∼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의병.

본관은 개성(開城). 호는 남전(藍田). 구례 출신. 아버지는 참봉 언기(彦起)이다. 정유재란 때 왜장 시마쓰(島津義弘) 등이 구례에 침입하여 읍이 함락되자 격문을 내어 약 3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 의병을 이끌고 하동과 구례 사이의 통로 가운데 요새지인 석주관(石柱關)에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큰 타격을 입혔으나 왜군과의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곧 이어 그의 아들 의성(義成)이 이정익(李政翼)ㆍ한호성(韓好誠)ㆍ양응록(梁應祿)ㆍ고정철(高貞喆)ㆍ오종(吳琮) 등과 함께 다시 석주관에서 적을 맞아 항전하다가 죽음으로써 이들과 함께 세칭 석주관칠의사(石柱關七義士)라 불리고 있다.

1804년(순조 4)에 조봉대부(朝奉大夫)ㆍ지평(持平)을 증직받았고, 1813년에는 정려가 세워졌으며, 1868년(고종 5)에는 석주관에 위패를 봉안하여 칠의단(七義壇)이라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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