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구례석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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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석주관성
종 목 사적 제385호
명 칭 구례석주관성(求禮石柱關城)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도로
수량/면적 29,965㎡
지정(등록)일 1993.11.10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65외 12필지
시 대 고려시대
고려 말기에 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진을 설치했는데 임진왜란(1592) 때 전라방어사 곽영이 호남지역의 왜적을 막기 위해 옛 진 위에 석주관성을 쌓았다.
성의 북쪽과 남쪽이 지리산과 백운산의 험한 산줄기이고 그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군사 방어 지형으로도 중요한 길목이다. 경사진 산허리를 따라 만든 성곽의 길이는 약 736m이고 돌로 쌓아 만든 벽의 높이는 50∼120cm이다.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갈라놓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잘 방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며 성벽 아래쪽과 위쪽의 쌓은 수법에도 차이가 있다.
호남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관문으로서 매우 중요하며, 13세기(고려후기)와 16세기(임진왜란)에 성을 쌓은 기법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은 구례 군청 소재지에서 동쪽 6km 지점에 있는데 북쪽과 남쪽이 지리산과 백운산(白雲山)의 험한 산줄기이기 그 사이를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천험의 요충지이며 하동과 구례를 통하는 호일령(湖一嶺)간의 인후지에 해당된다. 호남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석축관문(石築關文)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이 유적이 설치되게 된 배경은 고려말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이 곳에 진(鎭)을 설치하고부터인데 임진왜란 당시(1592) 고려때의 진성(鎭城) 위에 전라방어사 곽영(郭嶸)이 호남의 왜구를 막기 위해서 이 석주관성을 쌓았다.
경사진 산허리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현존 성곽의 총 길이는 약 736m, 석축 높이는 50-120cm로서 석축에 일정한 간격으로 단(段)을 두고 단과 단 사이에 타구(垜口)(성 여장에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갈라놓은 자리)를 두어 적의 공격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산허리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성벽의 중간부분 이하나 높은 부분의 축조기법에 차이를 나타내고 있어 13세기(고려말)와 16세기(임진왜란)의 관성축조(關城築造)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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