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왕재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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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재일 생가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 천변마을 364-1)
광주학생운동의 모체였던 성진회 총무 왕재일이 살았던 곳
왕재일(王在一, 1903~1960)의 본관은 개성, 호는 호산(壺山)이며, 전남 구례에서 출생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9월, 최규창(崔圭昌)·장재성(張載性)·박인생(朴仁生)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사회과학 연구·식민지노예교육 반대 등을 강령으로 하는 성진회(醒進會)라는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총무를 맡았다. 훗날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날 때 그것을 주도하는 모체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관련자로 체포되어 193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고, 1931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장흥지역 농민운동에 가담하였고, 1933년부터는 전남사회운동협의회에 참여하였다. 1936년에도 그는 장흥농민조합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2년간 투옥되었다. 해방 후 1947년 동광신문 편집차장을 지냈고, 1952년『호남절의사』를 편찬하였다.
1954년에는『전라남도사』편찬위원, 1959년에는 광주시보(光州市報)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가옥이 변형되기는 하였으나 과거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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