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황현 은거지 터 - 만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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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은거지 터 - 만수동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산67)
한말 우국지사인 황현이 처음에 살았던 광양 서석마을에서 구례로 옮겨 은거하며『매천야록』과『오하기문』, 1천여 수의 시를 지었던 집
구례 만수동(현 간전면 수평리)은 황현(黃玹, 1855~1910)이 구례 광의면 월곡(月谷) 마을로 이사하기 전까지 약 16년(1886~1902) 동안 생활하며 여러 여러 책을 집필했던 곳이다. 황현은 서른 하나의 나이에 동생 황원(黃瑗, 1870~1944) 일가를 포함한 식솔들을 이끌고 백운산 남서쪽 만수동에 정착하였다. 이곳에 이거한 후 그는 매화나무를 심고, 개울 아래에 옹달샘을 파서 식수를 해결하였으며, 일립정(一笠亭) 등 초옥(草屋) 몇 간(間)을 짓고서 칩거하였다. 그리고 1890년에 서재인 구안실(苟安室)을 지어 시를 짓고 저술에 전념하였다. 현재 당시의 주거공간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나 매화 한 두 그루와 매화샘(梅泉)의 자취가 남아 있다. 매천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구안실 공간은 황현이 구례 월곡으로 이사한 뒤에 불탔다고 전한다.
황현의 삶에 있어서 만수동에서 생활하던 시절을 흔히 은거시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문학적으로 더욱 원숙해지고 역사가로서의 면모는 더욱 철저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명한 저술인『매천야록(梅泉野錄)』및『오하기문(梧下記聞)』과 같은 대표적인 저술이 이 시기에 시작되거나 완성되었고, 후진 교육에도 전념하였다. 또한 그는 평생 많은 시를 지었는데, 그 중 1천여 수를 만수동에서 지었다.
현재는 구안실 및 일립정 터만 남아 있으며 옹달샘도 약간 변형된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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