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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문화재 운문효공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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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008회 작성일 11-08-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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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효공신도비 


 

종 목 보물 제584호
명 칭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求禮 尹文孝公 神道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75.03.31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 산91-1
시 대 조선시대

신도비란 죽은 사람의 생전의 행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우는 비이다. 조선시대에는 정2품이상의 관직에 있는 사람 중 위업을 세웠거나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모범이 될 때에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한다.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문신 윤효손의 신도비이다. 윤효손(1431∼1503)은 단종 원년(1453)에 과거에 급제하여 황해도관찰사,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두루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 성종때에는『경국대전』과『오례의주』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연산군 9년(1503)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돌은 앞발의 형태가 특이한데, 보통 머리쪽을 향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앞발은 뒤로 구부려 발톱을 아래의 연꽃받침에 붙이고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사실성이 뛰어나며, 꼭대기에는 둥근 돌을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비문에는 윤효손의 평생업적과 자손들의 계보 및 그의 충효와 인품을 기리는 글들이 적혀 있다.

조선 중종 14년(1519)에 세워진 비이다. 비문은 신용개가 짓고, 신공제가 글씨를 썼는데, 글씨는 고려시대에 비해 필력이 떨어진다.
이 비는 조선시대 문신인 윤효손(尹孝孫)(1431∼1503)의 신도비이다. 윤효손의 자(字)는 유경(有慶), 호(號)는 추계(楸溪), 본관(本貫)은 남원(南原)이다. 그는 단종 원년(1453)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예조정랑, 호조·예조참의, 황해도 관찰사), 경상도 양전순찰사, 한성부 좌윤, 형조판서, 우참찬을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 성종 원년(1470)에 『경국대전(經國大典)』, 『오례의주(五禮儀註)』를 수찬하였고, 뒤에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연산군 9년(1503)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중종 14년(1519)에 세워진 이 신도비는 선명한 운룡문이 조각된 1.2m 높이의 장방형 지대석 위에 한돌로 앙련대좌와 귀부를 만들어 얹었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상부 이수에는 반룡을 조각했으며 정상에는 노반 위에 보주를 얹었다. 이 비는 조선전기의 석비를 대표할 만한 수작으로 전체 높이는 5.27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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