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가 김삼의당(金三宜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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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당(金三宜堂)
삼의당 김씨는 조선조 영조 45년인 1769년 10월 13일에 남원의 서봉방(棲鳳坊:동촌, 창동, 장동, 구암, 교촌, 장승, 정치, 신기, 화산, 대정, 감성, 금강 등 12개 리를 관할 한 남원성 밖의 구역으로 지금의 향교를 중심으로 서남쪽의 향교동과 신정동, 화정동, 대산면 금성리 등에 해당한다)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金海金氏)로 연산군때의 학자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의 후손으로 부친은 인혁(仁赫 ?)이다. 여성에게는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던 당시의 관습에 따라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당호(堂號)로만 전해져 오고 있는데,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같은 분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녀의 나이 18세에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결혼했다. 하립은 진주 하씨(晋州河氏)로 세종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12대 손이다. 그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친가 규수시절(1769년 출생에서 1786년 결혼까지)와 남원 시가시절(1786년 결혼부터 1801년 진안 이거시절까지) 그리고 진안 정착시절(1801년 진안 정착부터 1823년 죽음까지)로 나눌 수 있다.
남원문화원에서는 그녀의 문학세계와 생애를 더듬어 더욱 높이 빛내기 위하여 1991년 11월 15일 그가 태어났던 서봉방 부근의 교룡산 기슭 교룡산국민관광지에 시비를 세웠다. 지금 남원의 향토인들은 그녀가 살았던 마을 찾기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당시 남원부 서봉방은 12개의 리를 거느린 곳으로 지금의 행정구역상 남원 향교를 중심으로 서남쪽의 향교동과 신정동, 화정동, 대산면 금성리 등에 해당되는데 김해 김씨의 세거지와 그의 유고집 중 농촌의 일년을 달거리체로 쓴 12월가(十二月歌)중 2월 상사일(二月 上巳)의 노래를 보면,
동풍에 수양버들 아련하게 푸르고 東風楊柳綠如烟
물굽이에 잔 띄워 소년에게 보내네 曲水流觴付少年
성밖에 미인들이 단장을 곱게 하고 城外紅粧多 艶
앞 냇가에서 목욕한다 소문이 도네 浴蘭消息又前川
이라 읊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수양버들, 성 밖, 냇물 등의 상황이 지금의 향교동 7통 유천(柳川)마을 주변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고노(古老)들의 증언이 있었다. 이에 따라 유천마을 주민들은 김삼의당이 이곳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마을 회관 앞에 1999년 5월 28일 김삼의당 시비를 세웠으며, 앞으로 삼의당 정자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 참 고
삼의당 김씨의 생애와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그녀의 문집인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이다. 이것은 원래 삼의당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삼의당 자신에 의해 필사되어 전해오던 것을 삼의당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1930년에 광주에서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가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는 순한문으로 된 2권 1책 30쪽 분량이다. 이 책에는 제 1권에 111편 235수의 한시, 제2권에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6편, 시작품의 앞부분에 쓴 서(序) 7편, 제문 3편, 잡문 6편으로 그 분량은 그리 많은 편이 못되지만 다양한 내용과 형식들이 두루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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