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황진가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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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가 고문서
종 목 보물 제942호
명 칭 황진가 고문서(黃進家 古文書)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고본
수량/면적 일괄(16종125점)
지정(등록)일 1987.12.26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시 대 조선시대
이 책은 조선 선조대의 무신으로 이차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한 무민공 황진(1550∼1593) 장군의 후손가에 400여년간 전해 내려온 고문서에 대한 조사보고서이다. 총 14종 125점이다.
황진은 선조 25년(1592) 동복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인에서 왜군과 싸움을 벌였다. 이어 진안에 침입한 왜장을 사살하고, 이치싸움에서 적을 격퇴하였으며, 이듬해 왜적의 대군이 진주를 공략하자 진주성에 들어가 성을 지키며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주로 황진과 관련된 문서들이며, 두 아들의 문서들이 있다. 이 고문서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사실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된다.
본서는 조선 선조때의 무신으로 이차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무민공(武愍公) 황진장군의 후손가에 400년간 전래하던 고문서이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명종 5, 1550∼선조 26, 1593)은 자(字)는 명보(明甫), 호(號)는 아술당(蛾述堂), 본관은 장수(長水), 영의정 황희(黃喜)의 5대손, 선조(宣祖)9년(1536)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선조 24년(1591) 통신사0 황윤길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서 그들의 침공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1592년 동복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찰사를 따라 근왕병을 이끌고 용인에서 왜군과 싸웠다. 이어 진안에 침입한 왜장을 사살하고, 훈련원판관이 되어 이치 싸움에서 적을 격퇴, 그 공으로 익산군수겸충청도조방장에 오르고 이듬해 충청도병사에 승진하여 연승했다. 왜적의 대군이 진주를 공략하자, 창의사 김천익 등과 진주성에 들어가 고수하며 역전하다가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진주의 창렬사, 남원의 정충사에 제향되었다. 광국원종공신 3등과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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