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남원향교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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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향교대성전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명 칭 남원향교대성전(南原鄕校大成殿)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1.12.02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향교동 1512
향교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고,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킨다.
남원향교는 조선 태종 10년(1410) 대곡산에 세웠다. 세종 10년(1428)에는 덕음봉 기슭으로 옮겨 지었다가, 홍수 때마다 길이 막히는 일이 많아 세종 25년(1443)에 현 위치로 다시 옮겼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는데, 대성전은 선조 32년(1599)에 지었고, 고종 29년(1892)에 수리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며, 지금 있는 건물은 1982년에 크게 수리를 한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당인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책·노비를 지급받아 운영하였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남원향교는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어 지방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남원향교는 기록에 의하면 향교가 처음 세워진 곳은 성내에서 서쪽의 큰 골짜기 지금의 대복사지(大福寺址)로 추정되며, 태종 10년(1410년)에 창건되었다. 세종 10년(1428년) 요천 건너편 덕음암(德蔭庵) 부근으로 옮겼으나, 홍수때 마다 요천의 범람으로 교생(校生)의 통학이 불편함을 깨닫고, 세종 25년(1443년)에 지금의 자리로 향교를 옮겼다. 그후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향교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선조 32년(1599년)에 지방의 부호 진사 유인옥(柳仁沃)에 의해 대성전이 재건되었다. 대성전은 높이 150㎝인 화강암의 석축위에 세워졌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그리고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광해군 원년(1609년) 전 감사 윤안성(前 監司 尹安性)과 남원부사 성안의(成安義)의 주관과 박대호(朴大虎), 유인옥의 도움으로 명륜당(明倫堂)을 재건하였고, 영조 24년(1748년)에는 진사 한동섭(韓東攝)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재건하였으며, 영조 48년(1772년)에는 허관(許灌), 황건(黃鍵) 등이 재실(齋室)을 수축하였다. 철종 원년(1850년)에는 부사 김병교(金炳喬)가 건물을 크게 중수하였고, 고종 13년(1876년)에 화재로 명륜당이 소실되자 당시 부사 오달선(吳達善)이 72명의 유림대표들로부터 총 3,755량을 모금하여 명륜당을 다시 신축하였는데, 현재 명륜당이 이때 세운 건물이다. 대성전은 고종 29년(1892년)에 부사 민종열(閔鍾烈)이 크게 중수하였다. 특히 남원향교는 향교의 학규(學規)는 물론 유생들의 내무생활규범 18조항을 만들어 이를 준수케 하였는데 그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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