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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인물 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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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42회 작성일 11-08-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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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0년(고종 17) 전라북도 남원(南原)에서 태어나, 1919년 4월 3일 덕과면(德果面) 일대의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덕과면 면장으로 재직하던 이석기는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통치에 분개하고 있던 차에 면사무소 직원 및 면내 유지들과 비밀 모임을 갖고 4월 3일 식수기념일(植樹紀念日)에 맞추어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당시 오수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조카 이광수를 극비리에 서울로 파견하여 오세창, 송팔용 등의 지도자를 만나 지시를 받고 독립선언문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3월 31일자로 면장직을 사임하고 그의 투쟁 의지를 남원군 19개 읍·면장을 비롯 인근 타군 면장에게 통문하여 함께 궐기하자고 권유했다. 이어 3월 31일 거사 당일에 가정마다 1명씩 신양리(新陽里) 뒷산의 도화곡(桃花谷)에 모이도록 지시한 뒤, 자신은 인근 각 면의 면장에게 보낼 만세운동 참가 취지서와 격문 〈경고아동포제군(警告我同胞諸君)〉을 작성해 20여 매씩 등사하고, 이를 면사무소 사환 김광삼(金光三)으로 하여금 전달하도록 하였다.

식수 기념일인 4월 3일 덕과면민들은 그의 선창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거사 당일인 4월 3일 8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진 식수기념일 행사가 끝나고 면민들에게 탁주를 대접할 무렵, 이석기는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 독립 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어서 초청되어 온 헌병주재소 소장과 보조원들도 당혹해 하였다.

그는 시위 군중으로 돌변한 참여자들을 이끌고 사매면(巳梅面) 오신리(梧新里)에 있는 헌병분견소로 가던 중 미리 작성해 놓은 격문을 낭독하고 20여 매의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어 헌병주재소 앞에 이르러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계속 만세운동을 지휘하다 남원읍에서 헌병 등 무장군이 출동하자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조동선(趙東先)과 함께 자진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된 이석기는 갖은 고문 끝에 같은 해 10월 고등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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