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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유적 남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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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45회 작성일 11-08-0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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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성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신문왕 11년(691 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동국여지승람』의 「남원고적조」에는‘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가 쌓은 성’이라 잘못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성곽조」에는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이 있던 해,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이는 등 성곽을 대대적으로 중수했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재란 때 크게 함락된 것을 숙종 18년(1692년)에 재축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유재란 당시 군은 평지의 남원성보다는 지형지세나 공수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호
남제일의 요충지며 남원을 방어하던 웅대한 이 성에는 원래 4문과 군창, 병 기고 등 많은 시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 홍예석문만 남아있으며 동학 농민군, 김개남장군이 주둔했다는 푯말도 붙어있다. 정유재란때도 평지의 남원성보다는 산세좋은 교룡산성전투가 유리하여 교룡산성 전투를 준비했지만, 원군(援軍)으로 온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은 어리석게도 평지의 남원성에서 싸우기를 고집했다. 그리하여 원군과 함께 남원성을 지키던 1만여 우리 군ㆍ관ㆍ민은 왜병 5만 6천여 명과 4일간의 혈전 끝에 아깝게도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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