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 남원

본문 바로가기

남원

유적 실상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44회 작성일 11-08-04 22:58

본문


실상사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들판 한가운데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2년여 전국의 산을 누빈 끝에 지금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다.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해줬고 왕은 태자선광(太子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증각은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켜 이른바 실상학파(實相學派)를 이루었고 그의 문하에서 제 2대가 된 수철화상과 편운(片雲)스님이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걸쳐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제자 수철대사와 편운대사도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신라불교의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상사는 세조때(1468)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록과 정유재란때 왜구에 의해 전소됐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됐다가 상사의 승려들은 숙종 5년(1680)까지 약 200년동안 백장암에서 기거했으며 절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 있었다 한다. 그러다가 숙종때 300여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다 전해진다. 또 순조 21년(1821) 의암대사가 제2 중·창건했으며 고종 21년(1884)에 월종대사가 제3 중·창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실상사는 한국전쟁 역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당시 주지였던 신태완 스님이 피살되기도 하였다. 이곳에는 또한 '실상사가 잘 되어야 나라가 부흥하고 일본을 제압하게 된다'는 도선국사의 비기에 의하여 실상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으며 왜와 관련한 설들이 많다. 특히 실상사를 중창하고 난 후 국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종을 만들고, 아침 저녁으로 나라가 번창하기를 기도하며 종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범종에는 우리나라 지도와 일본의 지도가 새겨져 있어, 이 종을 치면 일본의 경거망동을 경고함과 동시에 우리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와 같은 소문으로 인하여 일제 말기에는 주지스님이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종치는 것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지도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러한 사실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국립순천대학교지리산권문화연구원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한국통신로 142-24 T. 061-750-6343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255 E2 기초교육관 T. 061-750-5440
Copyright © 국립순천대학교지리산권문화연구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