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고득뢰 ( 高得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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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뢰 ( 高得賚 )
유형 | 인물 | 이칭별칭 | 자 은보(殷甫) |
시대 | 조선 중기 | 출생-사망 | 미상 ~ 1593년(선조 26) |
성격 | 무신 | 출신지 | 전라북도 남원 |
본관 | 용담(龍譚)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담(龍譚). 자는 은보(殷甫). 현감 고익흥(高益興)의 후손이며, 종사랑 고효륜(高孝倫)의 아들이다.
고득뢰는 기절이 있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한 뒤 감찰(監察)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는 평창현감(平昌縣監)에 제수되었으나, 완강하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고득뢰가 평창현감을 사양한 이유는 평창은 영동의 구석진 고을이어서 적병을 피할 만한 곳이지만, 그로서는 적을 물리치는 데 마음을 두었지 자신의 안전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득뢰는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를 따라 무주·거창·개령의 적을 차단하였고, 이어서 진주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힘껏 싸웠으나 마침내 성이 함락되어 최경회와 함께 순절하였다.
조정에서는 고득뢰에게 우윤(右尹)을 증직(贈職)하였고, 남원의 정충사에 다른 순절 의사와 함께 제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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