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양한규 (梁漢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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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규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1844~1907)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1844~1907)의 초명은 월서(月瑞), 자는 문찬(文贊), 호는 칙헌(則軒)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국권회복을 염두에 두고 우국지사와 연락하는 한편 사재를 털어 무기를 사들였다. 이어 그는 임실·순창·담양·곡성·함양·산청 등 영호남 일대를 돌며 장정을 모으고 이들을 훈련시키며 때를 기다렸다.
1907년 2월 12일(음력 섣달 그믐), 남원진위대 장병이 연말연시를 맞아 휴가나간 틈을 이용하여 양한규는 수백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남원성을 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새벽, 갑작스런 의병의 출현에 광한루에 본진을 두고 있던 일본군과 진위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고 의병들이 남원읍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양한규는 도망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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