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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인물 정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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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28회 작성일 11-08-0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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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창

본관 하동
호 일두
별칭 자 백욱, 시호 문헌
활동분야 정치, 문학
출생지 경남 함양
주요저서 《일두유집》

본관 하동(河東). 자 백욱(伯勗). 호 일두(一蠹). 시호 문헌(文獻). 함양(咸陽) 출생.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지리산에 들어가 3년간 오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483년(성종 14)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고 1490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받아 소격서참봉이 되었다. 같은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설서(說書)·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내고,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성리학의 대가로서 경사에 통달하고 실천을 위한 독서를 주로 하였다. 《용학주소(庸學註疏)》 《주객문답설(主客問答說)》 《진수잡저(進修雜著)》 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무오사화 때 부인이 태워 없애 그 유집(遺集) 일부가 정구(鄭逑)의 《문헌공실기(文獻公實記)》 속에 전할 뿐이다. 중종 때 우의정에 추증, 광해군 때 문묘에 배향되고 나주(羅州)의 경현(景賢)서원, 상주(尙州)의 도남(道南)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일두유집(一蠹遺集)》이 있다.


함양 남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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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사적 제499호
명 칭 함양 남계서원(咸陽 濫溪書院)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면적 4,810㎡
지정(등록)일 2009.05.26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1번지 일원
시 대 조선시대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에 지었다.

명종 21년(1566)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나촌으로 옮겨 지었다가, 광해군 4년(1612)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숙종 때 강익과 정온을 더하여 모셨다. 따로 사당을 짓고 유호인과 정홍서를 모셨다가,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 앞쪽 낮은 곳에는 공부하는 강학공간을 두었고 뒤쪽 높은 곳에는 사당을 두어 제향공간을 이룬 전학후문에 배치를 하였다.

누문인 봉수루를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앞쪽 양 옆으로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양정재와 보인재가 있다. 재 앞에 각각 연못과 애련헌·영매헌이 있다. 내삼문 안쪽으로 사당이 있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 밖에 전사청과 고직사·묘정비각 등이 있으며,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으며, 『어정오경백편』·『고려사』 등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정여창을 모신 서원은 전국적으로 9곳에 이르며, 그중 주된 곳이 남계서원이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이 서원의 창립은 조선(朝鮮) 명종(明宗) 7년(1552)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1450∼1504) 선생(先生)을 기리기 위하여 개암(介庵) 강익(姜翼)의 주동으로 유림(儒林)과 군수 윤확(尹確)이 세워 남계서원이라 칭하였고 명종 21년(1566)에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경내에는 누문(樓門)인 풍영루(風詠樓)와 동(東)·서(西) 양재(兩齋), 강당(講堂)인 명륜당(明倫堂), 장판각(藏板閣)으로 강학공간(講學空間)을 형성하고 뒤편 높은 곳에 내삼문(內三門)과 사당(祠堂)을 두어 제향공간(祭享空間)을 이루고 있다. 고직사(庫直舍)는 강당의 왼쪽 서측에 자리잡고 있다.


함양일두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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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
명 칭 함양일두고택(咸陽 一蠹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지정(등록)일 1984.01.14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62-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 정여창(1450∼1504)의 옛집으로,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사랑채는 현 소유자의 고조할아버지가 다시 지었다고 하며, 안채는 약 300년 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집의 터는 500여년을 이어오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솟을대문에는 정려(旌閭)를 게시한 문패가 4개나 걸려 있다. 대문을 들어서서 곧바로 가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사랑채는 'ㄱ'자 모양이다. 일각문을 들어서서 사랑채 옆면을 따라가면 다시 중문이 있고 이 문을 지나야 '一'자모양의 큼직한 안채가 있다. 왼쪽에는 아랫방채가 있고 안채 뒤쪽으로는 별당과 안사랑채가 있다. 또 안채 뒤 따로 쌓은 담장 안에는 가묘(家廟)가 있다.

이 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사랑채 앞마당에 꾸민 인공산이다. 돌과 나무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엄격한 법도에 따라 아름다운 인공산을 꾸몄는데, 지금은 원래의 옛모습을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구조적 특성과 함께 살림살이들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지정 당시 명칭은 '함양정병호가옥(咸陽鄭炳鎬家屋)'이었으나, 조선 성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일두 정여창(1450-1504)의 생가지에 후손들이 타계 1세기 후 중건한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함양 일두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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