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페이지 정보

본문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294호
명 칭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咸陽 昇安寺址 三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263
시 대 고려시대
승안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통일신라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곳곳에 고려 특유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는데, 위층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飛天) 등의 모습을 새겨두었다. 또한 위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조각을 새겨 둘러 놓았는데, 이러한 장식은 보기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고 있다. 2층부터는 몸돌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데, 1층의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여 놓았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의 경사는 급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며 네 귀퉁이가 거의 들려있지 않아 둔중해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가 남아있다.
대체로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을 잘 따르고 있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가 균형을 잃어 잘 다듬은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곳곳에 나타나는 특수한 양식이나 장식에 많은 힘을 기울인 흔적 등 고려 전기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원래의 위치에서 두 번 옮겨졌는데, 1962년 옮겨 세울 때 초층 옥신 윗면의 원형 사리공에서 원통형 사리함, 녹유사리병, 비단조각과 주머니, 유리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원통형 사리함 밑에 놓였던 주머니 안에서 홍치(弘治) 7년(조선 성종 25년 : 1494) 중수에 관한 내용을 적은 한지 묵서중수기(韓紙 黑書重修記)가 발견되어 이 장신구는 이 때에 장치된 것으로 생각된다. 발견된 사리장치를 통해 처음 탑을 옮겨 세운 시기가 조선 성종 25년(1494)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석탑은 10세기의 고려시대(高麗時代) 탑(塔)으로 2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전형(典型)적인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상층기단(上層基壇)의 4면에는 불(佛)·보살(菩薩)·비천(飛天)이 탱주(撑柱)를 사이에 두고 각면 2구(二軀)씩 모두 8구가 조각되어 있다. 한돌로 된 상층기단 갑석(甲石)에는 복련(覆蓮)의 연꽃잎이 특이하게 새겨졌고 1층 탑신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새겨졌다. 3층의 옥개석(屋蓋石)은 모두 4단의 받침이 있으며 추녀선은 직선이고 지붕면은 물매가 급하다. 꼭대기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 이전글진주민란 [晉州民亂] 11.09.21
- 다음글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11.08.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