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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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호 퇴옹(退翁)
생졸년 1912 - 1993
시대 대한민국
본관 합천(陜川)
활동분야 종교 > 불교인
1912년∼1993년. 승려. 성은 이씨(李氏). 호는 퇴옹(退翁), 성철은 법명. 아명은 영주(英柱). 경상남도 산청 출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晋州姜氏)이다.
비교적 유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장남으로서 집안의 기대와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천성이 명민하여, 이미 열살 무렵에 사서삼경 등 유서(儒書)를 읽고 모든 경서를 독파하였다.
1930년 진주중학을 졸업하고 청소년기에 이르자 그는 당시 물밀듯이 들어온 동서양의 철학·문학·논리학 등을 탐독하였다.
1932년에 작성된 그의 독서목록을 보면 《철학개론》·《순수이성비판》·《민약론》·《남화경》·《근사록》·《하이네시집》 등 80여권에 이른다.
그러던 중 1935년경 영가(永嘉)의 〈신심명증도가 信心銘證道歌〉를 읽고 마음의 눈이 열려, 지리산의 대원사(大願寺)로 찾아갔다.
거사(居士)의 몸으로 대원사에서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하였고, 이 수도 정진의 구도열이 이미 승려 이상의 진척을 보여 주위의 많은 승려들이 출가를 권고하기에 이르렀고, 그 스스로 출가시(出家詩)“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점의 눈송이요. 바다에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홀로 걸어가노라(彌天大業紅爐雪 跨海雄基赫日露 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를 짓고 승문에 들었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혜일(慧日)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 득도하였다.
이로부터 10년간 금강산의 마하연사,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사, 통도사의 백련사 등에서 안거를 하였다.
이렇듯 부단한 수행중 1940년 29세 되던 해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중에 견성하여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 遽然一笑回首立 靑山依舊白雲中)”의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오도를 한 이후에도 수행을 계속하였는데,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파계사 성전암·봉암사·묘관음사·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회 하·동 안거를 하였다.
1964년 도선사 동안거 때에는 청담(靑潭)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서원을 하였다. ① 항상 산간 벽지의 가람과 난야에서 지극하고, 도시·촌락의 사원과 속가에 주석하지 아니하겠습니다.
② 항상 고불고조(古佛古祖)의 유법과 청규를 시범역행하고, 일체의 공직과 일체의 집회와 회의에 참여치 아니하겠습니다. ③ 항상 불조(佛祖) 성훈(聖訓)의 앙양에 전력하여 기타 여하한 일에도 발언 또는 간여하지 아니하겠습니다. 이 서원은 성철의 수행의 일면을 보인 것이다.
1965년 문경 김룡사(金龍寺) 하안거 때는 처음으로 대중법문으로, 《육조단경》·《금강경》·〈증도가〉 및 중도이론을 설법하였다.
196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이석하였고, 1967년에는 해인총림 초대방장으로 취임하였다. 방장 취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사상인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 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란 법어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성철은 평소 제자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첫째 잠을 적게 자라, 둘째 말하지 마라, 셋째 책을 보지 마라, 넷째 간식하지 마라, 다섯째 돌아다니지 마라’고 권하였으며, 성철 자신도 청빈·무염식(無鹽食)·소암(小庵)의 생활을 하였다.
1976년 《한국불교의 법맥》을 출간하여 조계종 법맥의 시원을 확연히 밝혔고, 1981년 《선문정로 禪門正路》를 비롯하여, 《본지풍광 本地風光》(1982)·《돈오입도요문돈》·《신심명증도가》(1986)·《자기를 바로봅시다》(1987)·《돈황본 육조단경》·《영원한 자유》(1988)·《백일법문》(1992)·《선문정로평석 禪門正路評釋》(1993)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또 그의 지도하에 《선림고서총서》(전37권)를 번역 발간한 것도 큰 업적의 하나이다.
그의 근본사상은 돈오사상(頓悟思想)으로, 돈오사상의 핵심은 《선문정로》에 밝혔는데, “견성방법은 불조 공안의 실참실구(實參實求)하는 것이 첩경”이라 하였고, 삼관돌파(三關突破)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돈오는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안일여(熟眼一如)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선문의 수행에서는 항상 돈오돈수를 주장하며, 점수파를 경책하면서도 대중법문에서는 ‘자기를 바로봅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와줍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중생에게 불공합시다’라고 하였다.
수행은 철두철미하여 회향(回向)은 자재무애하게 하라고 법문하였다. 이렇게 활선(活禪)의 세계를 시현하다가 1993년 11월 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백련 불교문화재단에서 퇴옹성철대종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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