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불일암(佛日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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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佛日庵)
불일암은 고려시대 보조국사였던 지눌이 수행한 암자이다.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께서 폭포 옆 불일암(1983년에 소실되고, 현재 불일암은 이후 다시 세워짐)에서 수도하시다 입적하신 후 희종이 시호를 불일이라 내리게 되고, 그 시호를 따라 불일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폭포 밑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실 불일암은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 말사인 불일암이 유명하다. 漢字까지 똑같은 조계산 불일암이 유명한 것은 그 곳에서 법정 스님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쌍계사의 말사인 하동에 있는 불일암은 암자로서 보다는 불일폭포로 더 알려져 있다. ‘용추의 쌀바위’ 설화 역시 용의 승천 설화가 ‘쌀이 나오는 구멍’ 이야기와 습합 된 것으로 보인다.
1) 용추(龍楸)의 쌀바위
불일폭포(佛日瀑布)는 우리 고장의 명소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름난 폭포인 동시에 그 풍취(風趣)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더구나, 백학봉(白鶴峰)과 청학봉(靑鶴峰)이 우뚝 솟아 있는 심산의 흥취는 또 다른 신비감을 주고 있다. 지리산(智異山)의 그 웅대(雄大)한 멋이 여기에서 맺혀 그 극(極)을 이룬 듯 한 곳이다. 천 길 낭떠러지에 흐르는 비류(飛流)는 직하하여 소(沼)를 만들고 있으며 그 이름을 용소(龍沼)라 불리어지고 있다.
용소는 예부터 신비의 못으로 불리어졌고, 그 깊은 심연은 헤아릴 수 없어 더욱 신비롭다. 청학이 서식(棲息)한 이곳은 또한 이상향의 전설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풀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아득한 옛날 불일폭포 오른쪽으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옥수(玉水)는 자연의 신비를 담아 용소로 떨어졌고 그 용소에는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직 백학봉도 청학봉도 없을 때였으니까 무척 오랜 옛날이 아닐 수 없다. 이 이무기는 천년이 되면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것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불일암(佛日庵)이란 암자가 있어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뇌성이 치고 벼락이 나무를 때리며 무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산천은 천지가 개벽되는 것 같이 무서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산이 쩍 갈라지고 용소에서 용이 푸른 빛을 발하며 하늘로 오르고 땅은 마구 흔들리며 쾅쾅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다. 비는 쏟아지며 뇌성은 이 골짜기를 가르고 있었다. 이윽고, 비가 멎으며 뇌성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불일암에 있던 스님은 이제까지 무서워 꼼짝 못하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있다가 밖이 조용하며 어둡던 창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아! 이게 웬 일인가? 이제까지 용소 옆에 하나로 서 있던 산이 두 개로 갈라졌고 곱게 흐르던 물줄기가 없어지고 천인절벽(千仞絶壁)이 생겼으며 그 절벽으론 물이 떨어지고 있어 없었던 폭포가 생겨났었다. 이 모든 변화에 잠시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언덕을 내려가 보았다.
깊은 절벽 밑으로 새로 물줄기가 났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언덕에 큰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스님은 호기심이 일어나 절벽의 뚫어진 구멍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엔 쌀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스님은 눈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보았다. 틀림없이 쌀이었던 것이다. 스님은 기뻤다. 쌀이 나온다. 이는 분명 부처님의 자비가 내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두 손을 합장하고 감사를 드리며 부지런히 쌀을 암자에 옮겼다.
뒷날 다시 그 절벽의 뚫어진 구멍으로 다시 가 보았다. 그런데, 또 쌀이 나와 있지 않는가! 스님은 또 쌀을 암자에 옮겼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염불을 외우며 부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제까지 나무열매로 생식(生食)을 하며 지냈던 스님은 이제 여유가 생겼고 이 쌀을 화개 장에 팔아 다른 일용품을 사기로 했다. 하루는 쌀을 구멍에 옮기고 뒷날은 장터에 내다 팔고 점점 불어나는 재산에 재미가 났다.
이제는 염불도 귀찮아졌다. 세속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구나 주막집 아낙네의 눈웃음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승복을 입은 주제에 그곳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안타까운 심정을 말할 수도 없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쌀을 가져오고 내다파는 일을 계속했다. 하루는 장터의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스님 이렇게 조금씩 가져올 것이 아니라 며칠 모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가져오시면 수고도 덜고 목돈도 가질 수 있를 것을 무엇 때문에 거의 날마다 나르시는지 모르겠군요.”
했다. 스님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암자로 돌아왔다. 그는 그날 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저 쌀이 나오는 구멍을 더 크게 판다면 반드시 더 많은 쌀이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장터 아낙네의 말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는 날듯이 기뻤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날따라 날은 더디게 밝아왔고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스님은 구멍을 더 크게 뚫을 도구를 챙겨서 폭포로 내려갔다. 그는 열심히 구멍을 뚫고 있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뚫었다. 그리고는, 해가 지자 암자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또 그는 구멍을 뚫었고 닷새 동안이나 구멍을 뚫었는데 뚫은 구멍은 전 것 보다 3배 이상 크게 되었다. 스님은 마음이 흡족했다. 내일부터는 3배로 쌀이 쏟아져 나올 것이니 이제는 큰 부자가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로 밤잠을 설치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스님은 날이 밝자 큰 쌀자루를 메고 절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크게 뚫어 놓은 쌀구멍으로 갔다. 그러나 그 곳에는 3배로 많은 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톨의 쌀도 없었다. 스님은 구멍 속을 보았다. 또 보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어느 도둑놈이 나 몰래 그 많은 쌀을 가지고 간 것이라고.) 그래서, 그날 밤 스님은 그 쌀이 나오는 구멍 앞에 앉아 도둑을 지키고 있었다. 뜬눈으로 도둑을 지켰지만 도둑은 오지 않았다. 스님은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면, 오늘은 틀림없이 많은 쌀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구멍을 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뒷날 사람들은 스님이 욕심이 많아 구멍을 크게 뚫었다가 그만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천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용이 하늘로 오를 때 백학봉, 청학봉이 생겼고 용추는 용소가 되었으며, 불일폭포도 생겼다. 그 쌀이 나온 바위를 용추바위라고 한다.
출전 : 하동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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