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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문화재 쌍계사금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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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680회 작성일 11-08-0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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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금강문

쌍계사금강문.jpg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명 칭 쌍계사금강문(雙磎寺金剛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문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지었으며,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가 다시 지었다. 원래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정강왕(재위 886∼887)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전체적으로 부재 크기가 다소 작아서 가냘프고, 약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이 문은 신라(新羅) 문성왕(文聖王) 2년(840)에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창건하였고 조선(朝鮮) 인조(仁祖) 19년(1641) 벽암(碧巖) 스님이 중창, 1979년 고산 스님이 중수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翼工式)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측 박공(朴)에는 풍판(風板)을 달았다. 정면 어칸(御間)을 개방하고 양 측칸(側間)을 벽체로 막아 금강문이나 사천왕문(四天王門)의 일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문 안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모시고 있다. 금강역사는 부처님과 불법과 스님들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여 불교(佛敎)를 수호하고 악(惡)에는 철퇴를 내리는 천신(天神)이다. 왼쪽은 항상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는 '밀적금강(密跡金剛)', 오른쪽은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다. '금강문'이란 액자(額子)는 벽암 스님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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