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화엄사(華嚴寺,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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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華嚴寺,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에 인도 승려 연기조사(鷰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신라시대에는 원효가 화엄사에서 화랑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670년(신라 문무왕 10)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신라말기 헌강왕(875)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되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어 문종(1047~1083)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중수 되었으며, 인종(1126~1146)때 정인왕사가 중수, 명종 2년(1172)에 도선국사비 건립, 충렬왕(1236~1308)때 원소암 중건, 충숙왕(1313~1330)때 조형왕사에 의해 전면적으로 보수되었다.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이었다. 임진왜란(1592~1598)때에는 화엄사가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인조(1630~1636)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지금의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각황전이 건립되었으며 근래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와 더불어 지금의 화엄사로 유지되고 있다.
화엄사와 관련된 다양한 설화가 있는데, 연기조사(鷰起祖師)와 관련된 ‘화엄사 창건설화’와 조선 숙종 때 ‘각황전 중건 설화’가 대표적이다. ‘화엄사 창건설화’는 화엄사라는 명칭과 더불어 지리산의 명칭 중 하나인 두류산(頭流山)이 어떻게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각황전 중건 설화’는 각황전(覺皇殿, 황제의 깨달음)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말해 준다. 화엄사 각황전은 1962년 국보 67호로 지정되었으며, 이외에 화엄사에는 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35호), 대웅전삼신불탱(보물 1363호), 대웅전삼신불탱(보물 1363호), 서오층석탑사리장엄구(보물 1348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 300호), 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화엄사 서오층 석탑(보물133호), 화엄사 구층암석등(전남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보제루(시도유형문화재 49호), 천연기념물 제38호인 화엄사 올벚나무 등 다양한 문화제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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