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사성암과 백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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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과 백련지
1) 오산(鰲山)과 ‘화천하지리(畵天下地理)’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산 정상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틈이 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중 도선(道詵)이 예전에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地理)를 그렸다.” 한다.
출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 원효대사(元曉國師)와 잔수(潺水)
진평왕 때 원효국사가 일찍이 오산(鰲山) 사성암에서 수선(修禪)할 때에 산 아래에 섬진강의 여울소리가 너무 소란하여 선(禪)에 방해가 되므로 도술(道術)로써 강물 소리를 조용하게 하여서 그 뒤에 강물 결이 잔잔하여졌다 해서 잔수(潺水)로 이름된 것이라 한다.
출전 : 구례군지
3) 원효대사와 섬진강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구례 사성암에서 불도를 닦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원효대사는 어미니의 병환을 고치기 위하여 온갖 약을 다 구해다 드렸지만 조금도 병세가 좋아지지 않으므로 부처님께 밤낮으로 불공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꿈 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 “네 어머님의 병환은 천국에 있는 복숭아를 구해 드려야 완쾌되느니라” 하고 말하고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원효는 단숨에 그의 동생 혜공대사가 있는 연곡사로 달려가 꿈 이야기를 한 뒤에 혜공으로 하여금 천국의 천도를 구해 오도록 하였다. 혜공은 부처님의 은공으로 천도를 구해 어머님께 드렸고 그것을 드신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완쾌되었다.
그 후 어느날 잠에서 깬 어머니가 “무슨 강물 소리가 이렇게 크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구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원효는 섬진강변으로 달려가 두 눈을 감고 지금까지 닦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외우고 나서, 다시 하늘을 우러러 “어머님의 잠자리를 편케 할 수 있는 능력을 저에게 내려 주소서.”하고 불공을 드렸더니 시끄럽던 강물소리가 잔잔해졌다. 원효가 도불심으로 섬진강 물소리를 오산 밑에 가두어 버려 이때부터 섬진강 물은 잠자듯 고요해졌고, 그 후로 잔수(潺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출전 : 전라남도지
4) 무릉도원과 도선굴
아 여기는 사실은 인자 그, 왜정시대 때, 왜정시대 때 인제 일본 사람들이 화엄사 본방스님을 대처승을 만들라고 열일곱 살 먹은 처녀하고 강제 혼인을 시켰어요. 그래갖고 인저 지금 법당 자리에게 움막이 한 세칸 정도가 있었어요. 그래 거기서 인자 살게 해서 했는데, 해방이 되고 그 스님이 인제 입적을 허시고, 그리고 인자 보살 혼자가 여기서 한 65년을 혼자 살으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절로서의 그, 형태도 별로 없고, 저, 전통 사찰이고 화엄사 말사이긴 해도 어느 등산로의, 그, 휴식공간으로 이렇게 돼 있었는데요. 제가 인제 5년 전에 10월 달에 와서 복원을 시작하고, 그 때부터 인자 지금 모습까지 복원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제, 그 도선국사에 대한 자료고 뭐 일절 그런 것은 없고, 인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걸로 봐서는 지금 보시는게 그, 도선굴이, 도선학회에서 오신 분들이 ‘여기가 도선굴이다’라고 주장을 하셔서 도선굴인갑다, 전느 그렇게 알고 있고. 그러면 이네 특이헐만한 구전은 도선굴 이쪽으로 지리산 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을 썼답니다.
무릉도원이요?
무릉도원. 예, 그렇게 인자, 좋다는 뜻이겠죠. 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을 우리나라 최초로 하셨다 그러고. 그러고 여기에서 도선국사가 천하지리를 그렸다 그래가지고 그 동안 인자 어디 암석에나 없나 그러고 샅샅이 뒤지고 그랬는데 못찾았어요. 못 찾고,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광물질 때문에 지도 형태가 있어서 그걸 확인해 봤더니, 아닌, 자연적인 그 어떤 출분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거고. 그래서 인자 지도를 못 찾았죠. 그런데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것은 도선국사가 천하지리를 사성암에서 그렸다, 그런 구전허고, 또 이쪽에서 지리산 쪽으로 바라보이는 굴 안에서 인자 전개되는 그 경치를 무릉동원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썼ㄷ, 그 두가지는 확실히 구전이 도고.
도선께서요?
도선국사께서 최초로 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을 썼대요. 긍게 그 뒤로는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북쭉 금강산에도 있고, 그런 정도로, 다른 것은 없고. 도선학회에선 그, 각종 지에, 와 가지고 뭐 보고.
풍수지리를 사도린가 거기서 깨달았다고 그래서요, 지도하고 이렇게 우리가 비교해 보면서 어떤 이유 때문에 거기가 그런, 특별하게 잘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에, 긍게 설화는 그런 것은 있지요. 저기 경주 도읍지 설화하고…
경주요? 송악?
경주. 도읍지 설화하고 여기 인제 유사한 것은 경주 도읍지 설화에 인제 삼신산, 응? 삼신산 앞에 동해 바다가 있고, 그 바다 위에 그, 자라가 두 마리 있다, 그래서 자라 등에 인자 큰 바위가 바위 사이에 큰 구멍이 있어서 인제 동해바다와 통한다라는 설화가 있거든요. 근데 실은 인제 지리산이 인자 삼신산이잖아요. 근디 지리산에서 보믄 지금 섬진강이 이 산을 감싸고 있거든. 이렇게 안고 있어서. 그런께 이쪽에 인자 바다의 형국은 같죠. 그리고 여 산 이름이 저, 자라 오(鰲)자를 쓰그든, 에, 거북 형상을 이루고 있으니까, 자라 오자를 쓰고 있죠. 실제로 마을이 동해 마을이 있어요.
동해마을이요?
예. 동해마을이요. 동해부락이, 그래서 인자 그러고 지금 현재에 저 틈바위라고, 바위 사랑에 구멍이 있었다고 얘기 허거든요. 그래 그 구멍이 사이로 신발을 빠뜨리면 저 하동 포구에서 찾는다, 실지로 그랬어요. 그런 틈바위도 있고 그러지요. 그런데 인자 그러 그런께, 도선 구사를 …(녹음불량) 일반적으로는 모르죠. 설화는 경주도읍쪽 설화가 여기에도 있다.
그럼 도선스님이 조금 전에 얘기했던 사도리 이제 이인을 만나서 풍수지리를 처음으로 배웠고 여기에 와서 터득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과 관련되서 조금, 자세하게…
그런 내용은 내가 구전으로든지 들은 바도 없고, 문헌도 인자는 거의, 학회에서 얘기로는 바위틈에다가 부렸다, 하고 전에 나보고 그랬는데.
실제로는 도선국사가 주활동 지역이 영암에서 태어났다. 근대, 화엄, 구례에 활동 좀 했고, 광양 옥룡사에서 해탈을 했다고 그러는데 그 옥룡사에서 35년간 했고. 물론 또 전국을 돌아다녔단 전설도 있고 당나라에 갔다 온 얘기도 있고, 실질적으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곳은 영암하고 구례하고 광양지역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이 지금 전라남도, 전라북도·남도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 이 구례하고 광양 지역을 좀 비중을 두고, 구례의 경우는 지금 이 사성암, 그리고 연곡사하고 화엄사의 경우는 지금 저,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거기도 좀 다닐라고 하고, 그러고 사도리에서 풍수지리 처음 배웠다고 해서 거기 가면, 그 풍수지리 배웠다고 하는 자리가 삼국사란 절인데 인제 나중에 창건했다고 그러고, 그 지역을 좀 둘러볼 거고. 또 하나는 또, 미점사란 절이 이 지역에서는 미절로 통하던데, 그 절하고, 도선암이라는 절 있죠? 그 근처에 있다고 그러는데, 그 두 절을, 총 화엄, 그러니까 구례 지역에서는 여섯 곳을 좀 찾아다녀보려고 하는데, 여기가 구례에선 첫 번째, 동해라는 지역은 여기 거 산으로 올라온 자락…
아닙니다, 여 강 옆에. … 우리 강변도로 있죠? 요기 입구 쪼끔 지나면 마을이 하나 있어요. 거기가 인제 동해예요.
출전 : 예토(穢土)에서 정토(淨土)로(도선국사 문헌자료집)
5) 도선국사와 백련(白蓮)
구례읍 백련리 천마산 서남록에 백련사(白蓮寺)의 유지(遺址)가 있다. 세속에 전하기를 도선(道詵)이 오산(獒山)에 살며 멀리 바라보니 백련(白蓮)이 피어 있었다. 그래서 절을 세웠다고 한다. 속수구례지에 실린 설화가 이와 같다.
출전 : 구례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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