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판소리 송만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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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갑
송만갑은 당대 최고의 명문 가계 출신으로 태어나 국창(國唱)의 명성을 획득한 인물이다. 그의 가계 소리는 ‘송흥록 - 송광록 - 송우룡 - 송만갑 - 송기덕’으로 이어져 왔는데, 한 가계에서 5대에 걸쳐 명창이 배출된 일은 전무후무하다.
그는 동편 소리를 충실히 물려받았으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대 벽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모색하였다. 판소리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는 또한 판소리의 대중화를 선도하였다. 20세기 들어 대중 공연의 요구가 증가해 갈 때 그것에 발맞추어 협률사에 참여하여 판소리ㆍ창극의 공연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많은 음반을 취입하여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기도 하였다. 이뿐 아니라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우리 시대 판소리의 자원을 풍성하게 하는 기여를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를 근대 판소리사의 최고 거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송만갑이 태어난 집터는 구례읍 백련리 ‘위땅꼬랑’에 있다. 그 동안 구례읍 봉북리 122번지가 생가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봉북리는 나중에 이사해서 살았던 곳이다. 두 장소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지만 서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백련리 위땅꼬랑의 생가터는 얼마 전까지도 대밭이었으나 최근 택지로 개발되면서 옛날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봉북리 122번지는 현재 ‘구례 중앙교회’ 바로 앞인데, 당시와는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당시 송만갑의 집 위치만을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봉북리는 송만갑이 판소리를 가르친 곳이며, 또 국악인들이 교유하던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아용암(살아 있으면 100세 이상) 노인은 “자신이 봉북리의 송만갑 집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송만갑에게 소리 배우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자신도 어깨 너머로 토막소리를 배우곤 했다.”고 전한 바 있다.
백련리에서 살고 있는 강판옥(남, 95세) 노인이 전하는 말이다.
“광대들이 송만갑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 구례읍 북문통 ‘팔월녀’의 집 너른 마당에서 가설 극장을 설치하고 협률사가 와서 공연을 했는데, 그때 남원 광대라든가 사방에서 사람들이 와서 공연을 재미있게 했다.”
이것은 구례에 협률사가 왔을 때 광대들이 송만갑의 집에 머물던 장면을 설명하는 말로 보인다. ‘팔월녀’라는 여자는 큰 술집을 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송만갑의 연보로 볼 때 이 때의 모습은 1910년대 후반의 일로 보인다.
송만갑의 구례 생활은 판소리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구례 현지에 산재한 송만갑 관련 유적지와 구전을 통해 명창 송만갑의 소리 인생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그는 동편소리의 최고봉이자 근세 판소리의 전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의 소리는 박봉래, 김정문, 김광순, 박녹주, 박초월 등에게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례읍에 있는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에서 그의 소리를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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