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판소리 유성준
페이지 정보

본문
유성준
유성준(劉成俊, 1874-1949)은 고종초(高宗初)에 구례에서 태어나 해방 후 진주에서 작고한 명창이다. 유성준은 동편제의 전승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판소리 교육자로서 일평생을 바쳤는데 지금도 소위 ‘유성준제’라는 이름으로 그의 소리가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판소리의 교육과 전승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유성준의 생가는 구례군 광의면 연파리 2구(공북마을) 24번지다. 이곳에서 그는 부인, 아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유성준의 부친은 ‘유선달’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이런 호칭으로 보아 그의 부친도 판소리와 관련 있는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고향을 찾으면 그를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유성준의 집 뒤로 길이 있어. 그리 사람들이 다니는디. 유성준이가 방에서 심심허면 노래를 한 자리씩 흥글타령을 허면, 밭매러 가는 부인들이 환장을 해서 밭을 잘못 맸다고 그랬어.”
그의 노래에 반해 마을 아낙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는 내용의 일화이다.
또 부친 3년상을 치를 때 그가 제사를 지내러 와서 마을 당산에서 두 해 연속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소리를 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지그 아버지 제사지내러 와서 유성준이가 당산에 채알을 쳐놓고 두 번 했그만. 3년상인께 올해 허고 명년 허고, 당산에 채알쳐 놓고는, 요리 칠팔월 경이그만, 해갖고 동네 사람들 참 그 노래 잘 들었그만.”
「조선창극사」에서 “지금 70노령으로 오히려 건재하여 진주에서 군소배의 교도에 힘을 쓰고 있으니 학불염(學不厭) 교불권(敎不倦)이 그의 일생의 책무인가 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그는 일생을 판소리 교육과 전승에 앞장 섰던 인물이다. 유성준과 같은 이의 활약이 있어 일제치하를 거쳐오면서도 판소리의 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의 유적지가 정비되고 그를 기념하는 공간이 만들어져서 판소리와 자기 고장의 명창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