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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문화재 구례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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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097회 작성일 11-08-0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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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향교



종 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명 칭 구례향교(求禮鄕校)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5.02.25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서리 1472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정확히 지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연산군 5년(1499)에 향교를 없애고 중종 13년(1518)에 백련동에 향교를 지었다. 그러나 매년 제사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숙종 30년(1704)에 봉성산 아래인 현 위치로 옮겼다. 1825년에 명륜당을 수리하였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동무·서무 ·외삼문 등이 있다.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앞쪽 낮은 곳에는 배움의 공간은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뒤쪽 높은 곳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향교의 일반적 배치형태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특히 외삼문 밖에는 연못과 붉은색 문, 그리고 이곳을 지날때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하마비가 있어 옛스러운 맛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이곳에 보관하고 있는 책 중 『유학안』은 각 면마다 유학자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어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향교는 지방의 관학(官學)으로, 조선(朝鮮) 중종(中宗) 13년(1518)에 구례군(求禮郡) 백련리(白蓮里) 서북쪽에 건립했었는데,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가 출몰하여 숙종(肅宗) 30년(1704)에 이곳 봉서리(鳳西里)로 옮겨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앞쪽 낮은 터에 강학공간(講學空間)이 자리잡고, 뒤쪽 높은 터에 존현공간(尊賢空間)이 자리잡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강학공간은 외삼문(外三門)과 강당(講堂)인 명륜당(明倫堂), 동(東)·서(西) 양재(兩齋)로 구성되고, 존현공간은 내삼문(內三門)과 대성전(大成殿)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외삼문 앞 방지(方池)와 홍살문(紅箭門), 하마비(下馬碑) 등을 고루 갖추어 예스러운 맛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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