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홍도전(紅桃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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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전(紅桃傳)
저자: 미상
장르: 고전소설
홍도전(紅桃傳)은 조선 중엽 정유재란이 끝난 뒤 13년이 지난 1662년 남원부사로 부임한 어우당(於于堂)이 유몽인(柳夢寅)의 저서 <어우야담>의 내용 가운데「인륜편」'효열조'에 기록된 것으로써 정유재란 당시 전쟁에 참전하였던 정생(鄭生)이라는 남편과 홍도(紅桃)라는 부부의 일대기를 엮은 일종의 야사이다. 이들 부부의 일대기가 당시 구전되어 오던 것을 유몽인이 글로 엮어 후대에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조 중엽 일본의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대륙 정복의 야망을 품고 조선을 침략하였던 것이 곧 임진왜란이다. 일본은 1592년 4월 15일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부산·울산을 거쳐 함양·진주·공주·금산을 짓밟은 채 수도 한양(서울)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명나라 구원병이 출정하였으며 국내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관군과 함께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일본은 명나라 군대와 강화협약을 맺고 물러감으로써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 다시 일본은 15만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것이 남원지방까지 생생한 전화를 남긴 정유재란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는 조선소 14만 명의 구원병을 출정시켰다. 그런데 이때 이곳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3천명의 병력을 이끈 명나라 장수 양원이 남원에 도착하여 당시 남원성안 용성관(현 용성초등학교 본관 건물이 있는 곳)에 사령부를 두고 침략해오는 일본군과 격전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남원부사 임현을 비롯한 조선의 군관 수뇌들은 지세가 험준하고 성곽이 튼튼한 교룡산성에서 결전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양원은 일본 군대를 가볍게 여긴 나머지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본군이 남원성을 공격하게 되자 채 3일도 안 되어 일본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그해 8월 15일 밤 양원은 도망하고 말았다.
남원성이 함락될 즈음 이 지역을 끝가지 사수하고자 괭이, 쇠스랑 등의 농기구가지 들고 일본군에 항거하다 일 만여 명이 이곳 남원성에서 장렬하게 죽었던 것이다. 이때 장렬히 죽은 군·관·민들의 시체를 묻은 무덤이 곧 '만인의 총'인데 지금은 향교동 산록으로 옮겨 후세 사람들에게 충절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때 양원의 군대에 속해 있던 정생은 중국으로 양원의 군대를 따라 고고 그의 처 홍도는 일본 군대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판 '이산가족'의 이야기가 바로 <홍도전>이라 하겠다.
<홍도전>의 원문은 900여 자로 된 한문체이다. 이 <홍도전>은 당시 실제 있었던 실화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구전되어 오던 것을 유몽인이 그 줄거리만을 대략 정리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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