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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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판소리 명창. 정조때에 태어나 순조·현종·철종시대에 활동한 소리광대이다. 8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다.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歌王)으로 꼽히고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리에서 태어났으며, 판소리의 진양조를 창시한 김성옥(金成玉)은 그의 매부이고, 광록(光祿)은 동생이다.
그는 역대의 판소리 명창 가운데 기량이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판소리에 그때까지 없었던 진양장단을 도입하여 소리를 짜고 평타령으로 일관되었던 원초적인 판소리 선율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의 선율을 오늘날과 같이 발전시켰다.
계면조는 본래 남도무가(南道巫歌)나 민요에 있는 육자배기토리를 가리키는 것이며, 민요나 무가에서는 단순한 선율형태를 가지나 판소리에서는 매우 복잡한 선율이 많다. 계면조 선율에 이와 같은 정교한 선율형태를 도입한 것이 송흥록으로 보이며, 그가 잘하였다는 귀신의 울음소리, 즉 귀곡성(鬼哭聲)도 따지고 보면 계면조 선율의 교묘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우조는 가곡·가사에서 보이는 정가(正歌)의 선율을 판소리화한 것인데, 판소리에서 우조의 선율은 정가의 선율과 다른 판소리적인 특이한 선율이 구사된다. 이 판소리 우조선율의 특성이 송흥록에 의해서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원초의 판소리는 중중모리·중모리·자진모리 장단으로 짜여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송흥록이 판소리에 음악적인 변화를 주기 위하여 느린 진양장단을 도입하였다. 송흥록이 판소리의 속도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속도의 변화를 더욱 다채롭게 하고, 우조와 계면조로 선법적(旋法的)인 변화 및 판소리 음악의 정조(情調)의 변화를 더욱 다채롭게 하였다.
이와 같이, 장단의 변화, 조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송흥록의 판소리를 두고 당시의 사람들은 ‘여산폭포(廬山瀑布)’·‘호풍환우(呼風喚雨)’·‘천변만화(千變萬化)’라 하였다.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에서 “송선달 흥록이는 타성주옥(唾成珠玉) 방약무인(傍若無人) 화란춘성(花爛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李太白)이라.” 하였는데, 만화방창하다는 것도 그의 변화무쌍한 판소리 기교를 두고 이른 것이라 하겠다.
기량이 출중하고 판소리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기에 독보건곤(獨步乾坤)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신재효도 그를 시중천자로 꼽히는 이태백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모든 판소리에 뛰어났으나 그 중 <변강쇠타령>·<춘향가>·<적벽가>를 잘하였는데, 특히 <춘향가> 중 ‘옥중가’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이 대목의 귀곡성이 유명하다.
또한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하여 동편제 소리의 시조로도 꼽힌다. 그의 소리는 동생 광록과 수제자 박만순(朴萬順)에게 전승되었다.
- 판소리 중시조 송흥록
흔히 송흥록을 중국의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는 당시의 모든 판소리를 집대성하여 한 차원 높은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을 받게 된 것이며 동편제 창법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송흥록의 판소리에 대한 공적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계면조의 완성이다. 판소리의 기본이 되는 선율이 바로 계면조인데, 그의 귀곡성이 신기에 달했다는 표현은 곧 계면조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판소리 표현력의 증대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진양조의 완성이다. 진양조는 판소리 장단의 하나인데 흔히 송흥록의 매부인 명창 김성옥이 처음 개발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의 진양조 완성은 정가의 음악적 특성을 판소리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의 표현력의 증대에 기여한 것이다.
셋째로 경상도 민요의 메나리조(흔히 산유화조라고도 한다)를 전라도의 무가와 민요의 선율에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판소리가 전라도의 무가와 민요의 선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그에 의해 전국의 민요의 선율을 이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가 전라도의 지역성을 벗어나 민족 예술로서의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메나리조 도입은 판소리사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그는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던 다양한 음악적 유산을 판소리화 함으로써 판소리를 민족의 예술로 승화 계층과 지역을 초월하여 광범위한 지지와 애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송흥록이 한평생을 통해 얻어낸 판소리의 음악적 성과는 판소리가 200여년 가까운 긴 세월을 전승해오면서 오늘의 우리에게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터전을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송흥록은 오늘날 우리가 듣는 판소리의 틀을 개발하고 이 새로운 틀로 기존의 판소리를 완전히 재구성하였으며, 이것을 타고난 성음으로 표현함으로써 판소리의 새로운 지평을 일군 장본이었던 것이다. 송흥록을 판소리사의 중시조(中始祖)라 평가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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