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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유적 만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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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862회 작성일 11-09-2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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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지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만복사저포기」의 무대)

1. 만복사지

고려시대에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만복사는 남원읍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의 무대로 잘 알려진 사찰이었다. 고려 문종(재위 1046∼1083)때 세워진 이 사찰은 지금 남아 있는 절터와 당간지주의 크기로 봤을 때도 호남지역에서는 아주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은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북쪽에 금당을 두고 있었던 아주 큰 사찰로 지금 서쪽 편 금장자리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아주 큰 불상대좌가 남아 있어 당시에 사찰규모를 짐작케 해 주고 있다. 만복사는 남원읍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고려시대 평지 사찰로 남원 광한루와 함께 지리산 입구에 위치한 남원지역의 풍부한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찰이다.

『동국여지승람』 에 의하면 만복사에는 동쪽에 5층의 전각, 서쪽에 2층의 전각이 있고 그 안에 35척(尺)의 금동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으로 보아 만복사가 매우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만복사지는 1탑, 3금당의 가람배치로 전형적인 고구려식의 절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절중에 하나로 의의가 크다.

2. 만복사지와 「만복사저포기」

- 「만복사저포기」의 각 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들이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이 만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에 사는 가난한 노총각 양생(梁生)이 왜구의 침입 때 정절을 지키다 죽은 처녀의 환신(幻身)과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처녀가 떠난 후 장가를 가지 않고 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내용이다.

조선 초기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생육신이자, 당대의 천재로 이름을 떨친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잘 알려진 『금오신화』의 다섯 편 이야기 중 하나인 「만복사저포기」의 무대가 이 곳 만복사이다. 만복사는 정유재란때 남원성 전투로 왜군에 의해 불타버리기 전까지는 상당히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김시습이 소설의 무대로 만복사를 선택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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