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류의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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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태 설화
한양에서 떵떵거리고 살던 김판서에게는 두 아들과 별당이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딸이 18세 되던 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처녀의 몸으로 배가 산등성이처럼 불러졌던 것이다. 별당은 물론 결백을 주장했으나 식구들은 창피하다고 할 뿐 별당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딱한 것은 그 시대는 처녀가 임신을 그것도 판서의 여식이 그랬다면 망신은 고사하고 집안 꼴이 거들 날판이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소문날까 전전긍긍하던 김판서는 종을 시켜 류의태를 불러오게 했다. 류의태 정도의 명의라면 능히 이 일을 해결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진맥을 마친 류의태의 결론은 너무 절망적이었다. 별당의 배부른 증세는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병인데 기적이 일어나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한 목숨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김판서의 부인이 매달리듯 물었다. 어떻게든 딸을 구하고 싶은 모성은 기적이란 말에 일루의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류의태의 대답은 밑도 끝도 없이 더욱 암담할 뿐이었다. 별당을 데리고 천리 밖을 나서면 행여 무슨 수가 날 수도 있겠으나 그마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류의태가 떠난 후 김판서가 사랑채로 내려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버리자 별당의 어머니와 두 오빠가 의논하였다. 결론은 별당이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나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니 별당을 류의태의 말처럼 천리 밖 멀리 갔다 버리는 것이 나을 거라고 하였다. 오직 바람이라면 류의태의 기적이란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는 정도였다. 야심한 시각, 김판서 집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횃불도 밝히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가마가 두 채인 것으로 보안 김판서 부인과 별당도 같이 떠난 것만은 확실했다.
집을 떠난 일행이 거의 천리 밖까지 나온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해가 저물어 묵을 곳을 정했다. 이날 밤에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이튿날은 별당을 버려두고 되돌아 갈 계획이었다. 딱하게도 별당의 배는 더욱 불러져 배 위에 바가지 하나 더 엎어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날 저녁, 하인들이 묵은 방쪽에서 소란스럽더니 연이어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하인들의 말에 의하면 갓 죽은 노루고기를 삶고 있다는 것이다. 이 냄새를 맡은 별당은 작은 오라버니에게 한 그릇 갖다 달라고 청했다. 이 말을 옆에서 들은 어머니와 큰 오라버니도 눈짓으로 갖다 주라고 일렀다. 내일이면 버리고 갈 자식인데 그만한 청을 못 들어 줄 리가 없었다. 다만 평소 육식을 잘 먹지 않던 별당이 노루국을 청하니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갖다준 노루국을 훌쩍 마신 별당은 다시 한 그릇 더 갖다달라고 청했다. 이렇게 노루국을 마시던 별당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꼭두새벽이 되었다. 별당이 자는 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그 때 김판서 부인은 딸을 버린다는 생각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런데 딸이 부르는 소리를 들자 얼른 그 방으로 갔다. “아니, 이럴 수가...”
김판서의 부인은 방안의 광경을 목격라고 자칫 쓰러질 뻔했다. 별당의 배는 훌쭉 꺼져 있었고 아랫목에 벌레 떼가 우글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별당이 배가 불러졌던 이유는 이러했다. 어느 날 별당이 연당 앞에 서 있는 노송나무 밑에서 소피를 보았다. 그때 벌레가 배속으로 따라 들어가 알을 까서 희한한 병이 생긴 것이었다. 아무튼 별당의 배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얼굴에도 화색이 번져오자 어머니와 오빠들은 기쁜 나머지 집으로 급히 돌아오기 바빴다. 이런 사연을 큰 아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김판서는 완쾌된 딸을 보면서 기쁜 마음이사 한량이 없었으나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당장 치료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아내와 자식들을 천리 밖까지 고생시킨 소행이 괘심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딸의 완쾌한 일은 극비에 붙이고 급히 류의태를 불러오게 했다. 김판서의 위세라면 류의태 목숨이사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너는 어찌 병명을 숨기고 내 집안 식구들을 멀리까지 고생시켰느냐, 네가 양반을 속인 죄 죽어 마땅하리라” 김판서의 호령이 대단했다. 그러나 류의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자 김판서는 놀라서 입이 벌어지는가 하면 무안해서 얼굴도 홍당무처럼 되었다.
“그게 아니올시다, 천리 밖의 죽은 노루고기를 소인이 여기서 어찌 구할 수 있단 말씀입니까? 또 제가 가서 설혹 구한대 해도 천리 길을 왔다 갔다 하면 별당 아씨는 이 세상 사람이겠습니까? 소인이 자신이 없다고 한 것은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을 한갓 의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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