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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설화 용담사(龍潭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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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995회 작성일 11-08-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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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사(龍潭寺)

1) 용담사 창건 이야기

천년 전 용담사가 세워지기 전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그 용은 밤이 되면 여우로 둔갑하여 사람을 잡아먹고, 농작물을 해치는 등 가진 행패를 부렸는데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도선국사께서 큰 원력을 세워 이곳에 절을 지어 미륵불을 모시고 기도 중에 있었다. 어느 날 도선국사께서 해탈주를 독송하니 이무기가 순간 업보의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사라졌다 해서 사찰 이름을 용담사라고 했다 한다.

2) 용담사의 이무기

에~,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연대는 문헌이나 기록에는 찾아볼 수가 없고 구전에 의해서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고 또 고려시대 에 도선국사 고려말 신라초 도선국사 창건이라는 설과 설화가 있어요. 에 이무기가 천년묵은 이무기가 이무기 보셨나 몰라요? 이무기. (못 봤습니다. 웃음) 이무기가 전세에 업이 무거운 이무기가 용이 되야 용이 이무기가 여기가 전부 늪지대입니다. 용담사 주변이 늪지대요.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살면서 농작물도 헤치고 이렇게 힘없는 이렇게 여성분들 괴롭히고 여기가 무서운 지역이었다고 그래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겄지요.

마침 어느 고승이 용담사에 절을 세우고 불경을, 에~ 불경 중에서 해탈주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해탈주 해탈주를 독송하니까 이무기가 용으로 업보 허물을 벗고 용이 되야서 승천했다는 그런 좋은 설화가 있어요. 그래서 미륵부처님 미륵부처님이고 또 대웅전 대웅전 저 중앙 마당에는 에, 용담사를 상징허는 우물이 있어요. 용소 우물. 용담사를 상징하는 그래서 이곳에 누구든지 오시면 참 마음 일심으로 심신을 내서 분양을 허고 기도를 하시면은 번뇌가 마음의 번뇌가 다 사라지고 건강하고 슬기롭고 행복이 성취된다는 그런 신비로운 기운있는 도량입니다. 이곳에 오신 것을 반갑게 환영합니다.

여기는 이제 불교용어로 미륵불이라고 합니다. 석불은 보물 제42호에 등록이 되야 있고 천년 전에는 3층 목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3층 목탑이 있었는데, 풍신수길 왜정 때에 500년 전에 남원에는 만인의 총이 있어요. 진주성을 함락하고 왜적이 진주성을 함락하고 섬진강 하동으로 해서 구례 섬진강을 타고 남원성을 쥑여서? 구례로 진입로거든요. 구례 화엄사랄지 용담사 그 당시 500년 전에 전소가 되고 남원에는 만인의 총이라는 무덤이 있습니다. 건물이 불에 타서 어 석불이 끄을렸어요.

그걸 복원하지 못하고 임시로 보호를 보호막을 세운.. 다른 용담사 경내에 다른 전각들도 모두 그 당시 전소되고 복원 중에 있습니다. 저 앞에는 석불 앞에는 7층 석탑이 있는데 지리산권에서 연대가 가장 오래되고 오래되고 또 규모도 제일 크고 웅장합니다. 그래서 석탑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고 또 그 앞에는 석불과 석등 중앙에는 에 석등이 이렇게 안치되어 있습니다. 석등은 꺼지지 않는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무명을 타파하는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등을 세웠습니다. 법등이라고 허지요 자명등, 법등 ... 에 중생들의 마음에도 부처님과 똑같은 밝은 지혜가 있으니 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밝은 지혜를 성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상이예요. 에, 물 물도 잡수고 그러세요. 전부.

이 절에서 지금 대부분 지금 건물들을 보니까 다 새로 지은 건물들인데

언제? 지었냐구? 에 미륵불 보각은 십년 전에 이루어지고 대웅전은 3년 다 되었습니다.

스님 제가 이런 말 여쭤보기는 제가 쬠 죄송한데 스님께서는 혹시 거 고향이 어디신가요?

고향이? 고향은 대한민국이고. 하하하. 정읍이여요. 정읍 내장산. 내장산. 정읍이 고향인데 제가 독자라 우리 할머니가 절에서 살면 명이 길다고 그래서 제가 절을 몰르고 들어왔어요. 절을 몰르고 들어왔으니까 사회도 모르겄지요. 지금도 절을 모르고 들어와서 사찰도 잘 몰르고 절에 대해서도 사회도 잘 모르고 그럽니다. 절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고. 하하하

스님, 용담사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용담사에 온지는 꽤 됐어요. 약 20년쯤 됐어요. 제가 봤을 때 석조물만 폐사직전에 폐사나 다름이 없었는데. 이렇게. 창건했어요. 정읍 내장산에 있었는데.

그러면 스님 여기 말 그대로 여기가 말 그대로 폐사지였다는 거죠?

폐사지나 다름없었지요. 건물이 초라하니 몇 동 있었어요. 비가 세고 다 뿌세져가지고.

그럼 스님 그 죄송한데 그때 당시에 거짐 폐사지 임에도 불구하고 뭐 석등이라든가 탑이라든가 입상 같은 게 계속 있었을 거 아니예요.

예 그렇지요. 천년 전부터서 옮기거나 에 그러지 않고 그 자리에 이렇게 모셔져 있었지요.

혹시 그 전에 이런 탑이나 오시기 전에 탑이나 입상 주변에 사람들이 오셔가지고 뭐 불공을 드린다거나 아님 뭐 그런 경우도 있었나요?

불공을 날마다 드리지요 일요일 날도 지난 일요일 날에도 순천에서 두분 세분 오셔가지고 불공드렸는데. 순천에 사시는 분이.

스님 여기 뭐 이렇게 뭐냐. 제가 이렇게 많이 들어보면 도선국사 저기 아까 침에 대복사도 도선국사께서 창건하셨다는 이야기도 있고.

전국에 도선국사가 분이 꼭 창건해서 도선국사가 창건했던 것은 아니고. 그 당시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원조요. 비조. 그 분을 능가할 분이 안계셨어. 그분을 끌어다 대는 거요. 요즘에도 사회에서 뭔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분 이름을 대고 그러조. 참석을 안해도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렇습니다. 도선국사와 거리가 먼데도 도선국사의 맥을 거기다 대는 거죠. 유독 남원 같은 경우는 대복사도 그러고 근거리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던 절이 많다고 그래서

예 혹시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게…

그렇죠. 전국적으로요, 석조물은 대부분 도선국사가 에 비보사찰로 비보란 것은 에 그 지역의 여기가 남원이거든요. 남원의 지역 흥망성쇄가 일어나지 않고 정말 평화롭고 자애롭고 행복게 살 수 있을려면은 재앙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자연적인 재앙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산의 혈이나 지맥을 기를 누르기 위해서 안정을 시키기 위해서 탑이나 석불을 세우게 되죠.

근데 대복사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거기도 이무기 관련된 그, 전설이 있더라구요. 여기도 용담사같은 경우도 이무기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서 거 실질적으로 제가 쫌 돌아다녀 보니까 쫌 사찰 중에서도 입지가 좋고 나름대로 그런데는 이무기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스님들이 오셔가지고 이무기를 퇴치한다거나 이무기를 이렇게 해탈시킨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오던데 혹시 이 주변에서도 아까 침에 저기 기록된 거 외에도 나름대로 전해진 거 들으신 바가 있으시면?

남원에서는 그걸 설화를 뒷받침하려는 자료가 충분해야 되거든요. 용담사는 이렇게 지리산 융모정에서 물이 호수 물이 용담사를 감고 흘러가요. 그래서 이 주변이 전부 늪지대고 태극혈이라고 헙니다. 에 그래서 용소가 있어요. 용소가 용담사, 요 사채 뒤에 개울에가 깊은 용소가 있고 사찰에서도 에,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우물이 언제 생겼는지는 몰러도 수심이 아주 깊습니다. 우물 마시는 식수 우물이 약 20미터나 되야요. 용담이라는 것은 용소라는 것은 폭이 좁고 깊게 형성되얐거든요. 산중에 가 봐도 뭐 다른 사찰 남원에서는 이무기 용 이런 설화는 우리 용담사가 확실하게 이렇게 전설에 보도가 되야 있어요. 전설의 고향이라고 있거든요. 그런 데도 나와 있고.

그런데 그 스님께서 이렇게 오셔가지고 20년 동안 여기서 계시면서요, 말 그대로 절터를 잡으시고 이렇게 대웅전도 지으시고 그런 작업들을 하셨잖아요. 그렇게 쫌 전 이야기 듣고 싶은 게 스님한테 말 그대로 인제 예전에 조선시대 이 절터를 다시 만들었다면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을 것인데 스님께서 말 그대로 폐사지와 다름없던 곳에 들어오셔 가지고 절을 이렇게 하셨을 때 진짜 고생도 많이 하시고 많이 하셨을 것 같다는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고 그러거든요. 고생담도 듣고 싶고 그런데

제가 용담사 와서 말로 전할 수 없는 심적인 고생을 했습니다. 사실. 문화재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지만 관련된 부서에서 기관에서 문화재청이랄지 그런데서 관심이 없었어요. 관심이 없어 현재 석불이 비가 맞으면 막 목이 금방 달아날 것같이 금이 갔어요. 돌에는 물이 묻으면 산정하거든. 비오는 날이면 그걸 보고 목이 부러지믄은 안되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비를 맞지 않게 보각을 지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남원시에다가 그때는 남원군이었어요. 막 협조를 요청허고 문화재 관리국에 요청허고 듣지 않는 거에요. 담당자 실무자들이. 왜그러냐면.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할라는 의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 부서에 중앙에다 진정서도 내고 막 방송에 보도하고 해서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지금 이렇게 만이라도 비바람을 문화재가 영원히 우리 다음세대 다음세대까지 물려주는데 손색이 없어야 된다는 그런 일념으로 조상의 얼과 슬기로 이루어진 정말 자랑스러운 가치성이 있는 석조물입니다. 지금까지도 잘 보존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 절에 20년 동안 계시면서 이 절을 주로 찾고 불공을 드리시는 신도님들이 주로 어디서 많이 오신는가요?

신도님들은 남원에서도 오시고 여기가 오래된 고찰이라 에, 저 대구랄지 근 전주랄지 가까운 데에서도 드물게 이렇게 오십니다.

혹시 이 근방에서 주로 많이 오시는 마을 주민들은…

마을 주민은 남원시민입니다. 마을 시민은 용담마을 70세대가 사시는데.

그분들이 옛날부터 폐사지 때부터 계속 거주하신 보셨겠네요.

예, 그렇죠.

저기 미륵부처님 모셨으니까요. 신기한 동물들 말구요. 민초들의 삶과 관련된 얽힌 이야기들도 있을 법한데

아, 예 그렇지요. 여기 미륵부처님은 말하자면 현재 용담사안에 터가 좁은 편이지 넓은 관경은 아니거든요. 좁은데 석조물은 지리산권에서 최고 웅장합니다. 지리산에서. 다른 말로 하면은 이렇게 남성미가 있어. 석불이랄지 석탑이랄지. 그래서 남성미가 있고. 또 하늘을 상징하고 남자는 건, 여자는 곤이라고 허거든요 어린애, 아들을 두지 못하는 불자님들이, 보살님들께서 여기서 불공을 드리면 틀림없이 아들을 난다는 그런 전설이, 설화가 있어요. 그래서 현재에도 남원에서 용담사 미륵부처님 앞에서 공을 드려서 우리 아들을 낳았습니다. 스님,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이렇게 하나뿐인데 용담사 부처님 앞에서 공들여서 애기예요. 이런 얘기를 많이 듣고. 현재도 남원시청에도 어떤 누구라고 말씀드리기는 그러고 그분도 딸만 넷인데 딸만 넷인데 제가 어떤 분이 어느 날 오셔 가지고 어떻게 오셨습니까 허니까. 이렇게 점 보는 분이 있어요. 시골에 할머니들이. 점 보는 분이 점 보는 할머니가 용담사 부처님께 공을 드리면 틀림없이 아들을 난다고 해서 왔습니다. 스님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래서 백일 간 미륵부처님 앞에서 정화수를 올리고 일념으로 기도를 허면 틀림없이 아들을 날겁니다. 근데 기도 중에 임신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어린애를 낳는데 그런데 아들을 낳았어요. 지금 남원시청 직원이, 그런데 그런 분들이 한 두분이 아니고 제가 듣기로는 남원 시내에 많이 계십니다.

그리고 또 kbs인가 mbc 인가는 잘 모르겠는데 15년 전에 남산골 부처님 앞에 공을 들이면 아들을 난다고 해서 방송국에서 여성분이 전통적인 의상 우리한복 검정치마 흰 저고리 입고 고무신 신고 여기 와서 그저~ 방송 녹화하는 걸 제가 봤어요. 남산골 부처님께 공을 드리면 아들을 난다며 그 장면 연속극에서.

혹시 스님 이거와 연관 되가지고 혹시 다른 그렇게 여기서 공을 드리다가 이렇게 아기를 가졌는데 혹시 그 미륵불이 꿈속에서 현신했다거나 그런 이야기 혹시 한번 들어보셨는지. 아기 갖기 전에 태몽을 ~ 자주 이야기는 안하지만 그런데 신기해서 공을 들이다가~ 신기해서 태몽을 꿨다는~ 들었던 이야기.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다른 분이 다른 지역에 계시는 분들이 충청도랄지 전라남도 월출산 그런데서 기도하시는 분이 있어요. 산기도 산기도 하시는 분이 자기가 기도하다가 유명한 미륵부처님이 영엄 있는 데를 있는데 가보라 해서 여기를 왔다는 분이 있는데 와서 보니까 자기 꿈을 꾸니까 똑같다는 그런 이야기는 하셨어요.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미륵부처님이 있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절이 세워지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불공도 드리고 그랬겠네요. 거진 이렇게 절 건물 없고 폐사지였을 때부터.

천년설을 한결 같이 분양을 하던 영엄이 있는 곳입니다.

다른절에서 보면 칠성각과 같은 비슷한 역할을, 칠성각이 따로 있는가요?

칠성각이나 산신각은 스님이 살면서 신도분이 산신도 찾고 칠성을 찾으니까. 잘 모아놓고 거기서 정성을 드린다고 해논데고 미륵부처님이랄지 이렇게 머 석탑은 불교신앙적으로 태초부터 이렇게 미륵부처님은 두 가지 소원이 있어요. 도솔천용화회상 저~ 천상이 하늘나라에 도솔천이라는 데가 있어요. 불교용어로. 미륵부처님은 도솔천에 계시는데 불자들을 신도 분들이 정성을 드리는 도솔천에서 미륵부처님이 내려오신다고 그 기운이 그래서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이 성취되라 하고 기도를 하고 또 누구나 생사를 다 겪게 되잖아요. 사람이 태어나면 죽어야 되니까 사후에는 도솔천 용화회상에 미륵부처님의 월력으로 그럴 수 있다 두 가지 신앙이 있죠. 생전에는 평화롭게 살다가 미륵부처님께 공을 드린거 가피를 입어서 도솔천 용화회상이 태어난다. 하는 두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20년 전에 처음 들어오실 때 상황이 그려지지 않습니다만 혹시 머 기존의 이 머 이 용담사에서 출간했던 서적이라든지 그런 종류 문서라든가 있습니까?

제가 88년도에 여기를 왔는데 그 당시에는 건물이 노후되고 또 이렇게 그런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남원시내에도 그런 부탁을 해가지고 용담사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보라고 신도들한테 부탁했습니다. 그런 기록은 500년 전에 500년 전에 다 불타버리고 다른 기록도 없담니다. 여기서 출토된 것은 미륵불 보각을 짓기 위해서 공사를 하기 위해서 파해치니까 주춧돌이 이렇게 있어요. 주춧돌 초석 초석 위에다가 현재 기둥을 세운겁니다. 그걸 보존하기 위해서 옛날 기와장 수백년 전 기와장 현장에서 나온 게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오래된 어느 시대인줄 몰라도 이조시대네 고려시대네 하는 불상

낯선 한번 뜻 좀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면…

건물을 10년 전에 지었는데 8평이에요. 부처님은 석불은 웅장한데 건물 평수가 작으니까 비가 오면은 토광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비가 오면은 저기까지 비가 맞아요. 바람이 불어서 눈이 오면 저기까지 들어차고 그래서 건물을 다시 증축을 하기 위해서 기도중입니다. 그래서 백제 성왕 때 창건한 용담사 미륵전 불사에 동참하세요. 소원성취 발원합시다 해서 신도원들 앞에 안내를 하는거요. 기도하고 있다고 주문이 있습니다. 소원성취 불교에는 여러 가지 주문이 있어요. 주문이 긴 것은 다라니라고 합니다. 인도 용언데 한문어로도 해석이 안 되고 다른 용어로 해석이 안 되고 다만 신비스럽게 독성을 하는 거죠. 앞에 현재 소원성취는 옴마모카살바다라사다야시계흠 옴마모카살바다라사다야시계흠 옴마모카살바다라사다야시계흠 3번 독성을 합니다. 소원이 성취된다는 비밀스러운 주문 소원 성취지는 옴마모카살바다라사다야시계흠 대한민국 어느 스님이든지 불공을 모시면은 이 주문은 빠지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 이렇게 마을이나 입석 이런거 불상에 있는 지역에 거주하시다 보면 자주 접하니까 혹시 스님께서 여기서 주무시다가 혹시 이렇게 불상과 관련된 신을 꿈속에서 봤다거나 그런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보통 불상있는데 가보면…

현몽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 살면서 이사 와서 몇 개월 안됐는데 꿈을 꿨어요. 여기 용담사를 꼭 안고 있는 판이 울타리 같습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왔는데 저 산에서 용담사를 물이 넘쳐 들어오는 거에요. 비가 많이 오니까 흙탕물이 넘쳐 들어오는데 여기 석불 앞에서 샘이 솟는 거에요. 맑은 물이. 다른 데는 탁한 물이 넘치는데 맑은 물이 샘이 솟는데 거기에서 정말 아름다운 꽃 다섯 송이를 본적이 있어요. 그건 지금도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데 아주 어떤 해석은 내리지 않고 어떠한 이렇게 정말 풍랑이 일어나도 맑은 샘이 샘솟듯이 그런 맑은 정신을 가지면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혼자 해석만 하고 있습니다.

스님 보통 이러면 마을 가보면 1년 중에 큰 행사 있지 않습니까. 용담사 같은 경우에는 1년 중에 부처님 오신날 빼구요. 혹시 가장 사찰 자체적으로 큰 행사를 1년 중에 어떠한 행사가 있나요.

특별히 여기서 행사는 치루지 않고 남원에가 다른 지역에 비해 사찰이 많이 있습니다. 절마다 석불이 봉안되어 있고 식구들이 모여야 행사를 하는데 별도로 큰 행사는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오시는 분들이 공을 드리는데 여기서 정말 불가사의한 신비스러운 일을 제가 경험을 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기가 뒤에 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사 와서 여름에 보니까 어린애가 빠져서 죽었는데 경찰관이 건져 놓드라구요. 물속에 수영하다 죽는 수가 있잖아요. 그날 환경이 그날뿐만 아니라 1년에 한번씩 죽는다 해요. 시민들이 이야기 하기를 용담사 뒤에 물에서 빠져 죽었다 그래요. 그러면 용담사가 피해를 용담사 뒤에 가서 좋은 일이 생겼다 그래야 좋잖아요. 사람이 젤로 소중한데 인명인데 목숨인데 목숨을 잃었다니까 가슴이 아파서 부처님 기도 월력으로 그런 일을 없애야겠다 하고 남원시민분들 용담사 신도 분들 5~60명을 모아놓고 고사를 지냈어요. 고사 아시죠? 좋은 일에 성취되라는 고사 그런데 그날 기적이 일어난 것은 운이 안 좋은 분한테 떡도 해오시오, 과일도 좀 하세요. 사오시오. 또 부처님 앞에 올릴 생미도 백미도 이렇게 시켰어요. 하실만한 분한테 이 마을에 사는 분한테 또 한마를 해오시면은 금년에 시간이 바쁠려나 하니까 해오세요 하니까. 해온다 그러더라구요. 마음만 있으면 떡 한말 못해오겠어요. 그런데 그 분이 고사지내는 날 오전 11시에 했는데 정월이라 추우니까 다 모였는데 떡만 안 왔어요. 그런데 앞집이니까 떡 빨리 가지고 오라고 55살 먹은 건강한 분이 다라이에다가 물을 떠놓고 머리를 물속에 쳐박고 죽었더라구요. 그분이 떡을 해올 집인데 그 아줌마는 출타하고 그런데 떡이 없는 걸로 고사를 지냈어요. 그 집 아줌마가 오셨어요. 신랑이 죽는 줄도 모르고 떡도 안 해오고 이제 왔습니까. 우리 신랑이 용담마을에서 제일 가난하게 살았는데 스님 왜 하필 떡을 해가지고 오느냐 부자집에 가서 해오라 하지. 스님한테 여러 안 좋은 소리 욕설을 하면서 사다가만 놓으라고 죽으라 하면서 여자가 할 설거지를 남자가 했다 이거요 그러니까 죽었는데 떡을 내왔으면 여자분이 설거지를 하잖아요. 죽을 일은 없지 그날 그분이 전부 액운을 안고 갔는데 20년 동안 개울가에서 한 번도 익사한분이 없어요. 연년 익사를 했다는데 그게 정말 신비스러운 미륵부처님의 월력이라 생각합니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최근의

스님 이 주변에 용수 말고요 주변 지명 좀 그래도 신비한 제가 잘 찾아보지 못해서 그래서 신비한 지명이나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 혹시나 이 주변에.

용소가 있고 용소 옆에는 거북바위가 있어요. 실제로 거북이가 물속으로 때로는 거북바위가 있고 거북바위 위에는 선비바위가 있고 책상바위가 있고 나도 모르는데 마을분이 알려줘서 가서 봤어요. 책상바위네 선비바위네 거북바위.

혹시 관련된 간단한 이야기나 왜 저게 거북바윈가 책상바윈가.

거북이처럼 생겨서 거북바위고 물이 좋고 그러니까 선비들이 와서 글도 읽고 그랬다고 책상처럼 바위가 생겼어요. 네모나게 그래서 선비들이 글도 읽고 한가하니 풍월을 읊었다는 그런 의미죠.

산세로 보나 트임으로 보나 정말 명당이에요 요자리가…

명당 명당이라는 것은 어떤 분이 명당이 뭐냐고 내가 물으니까 잘 모르시더라고. 그냥 좋은 곳을 명당이라 하거든 좋은 뜻을 산개왈 명이요 수회왈 당이요 해서 두자를 합해서 명당이라 합니다. 산개왈 큰 산에 올라가서 보면 산에 좌우로 딱 벌렸어요. 열개 자 주상이 고용대개자는 왈 명이요 중소가 최해자는 산이 떡 벌리고 있으면 물이 돌아요 산따라서 물이 물이 돌면은 당이라 집당자인데 두자를 합쳐서 명당이라는데 이곳에는 큰 산맥이 이렇게 쭉 내려오고 산맥을 용담사를 따라서 물이 감아 돕니다. 이쪽에 남원 지리산 쪽에 명당중 에 명당이라고 그렇게 살라고 또 이곳이 비산비하로 형성되어 있지만 산기운이 기가 세다고 해서 석조물이 웅장해요 기운이 세기 때문에 석조물이……

채록 : 2008. 09. 24. 자료 제공자 : 용담사 정암 스님, 조사자 : 지리산권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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