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3·1운동 만세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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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만세시위지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110 일대)
1919년 4월 4일 남원지역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남원지역에서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4월 3일 덕과면 동해골에서였다. 다음날인 4월 4일은 마침 남원읍 장날이자 전날 도화곡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매면장 이석기(李奭器)가 남원으로 압송되는 날이었다. 남원읍의 천도교인과 기독교인들은 이 날을 기해 대규모 만세운동을 진행하기로 결의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군내 각지에 통보하였다.
4월 4일 정오가 지나서 광한루 옆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금세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일제 관헌이 미리 사태를 예견하고 온갖 방비책을 썼으나 불어나는 군중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태극기를 손에 든 군중이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장터를 벗어나 헌병분견대 방면으로 행진하려 하자 군경이 합세하여 극단적인 진압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시위군중을 향한 무차별 사격으로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던 방극용(房極鏞)·방진형(房鎭馨)을 비롯한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 외에도 이 날의 만세운동을 사전에 계획하였던 이성기(李成器)와 당일 시위에 앞장섰던 형갑수(邢甲洙)·황일환(黃日煥) 등이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한루원 서편 확장공사로 현재는 장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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