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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불교 정취암(淨趣庵,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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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606회 작성일 11-07-0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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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암

(淨趣庵,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78, http://www.jeongchwiam.com)


정취암은 대성산(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한다 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정취암은 신문왕 6년(686)에 동해에서 장육금신(부처님)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는데 이때 의상조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암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정취암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양(천공)과 관련해서 율곡사의 창건자인 원효스님과 정취암의 창건자인 의상스님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정취암은 그 명칭에서 말해주듯이 정취관음보살과 관련된 사찰로서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유일의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 2년(858) 굴산 범일선사가 강원도 낙산사에 봉안했던 정취보살상을 고려 고종 41년(1254)에 명주성이 몽고에 함락될 때 야별초 10인과 사노인 걸승이 땅속에 묻어 난을 무사히 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경상북도 기림사의 주지스님 각유선사가 이 정취보살상을 왕에게 아뢰어 궁궐에 모시게 하였고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화경, 경신 두 거사가 정취암을 중건한 후 이 정취보살상을 정취암에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 효종 3년(1652) 화마가 진동하여 원통보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이 전소하였으며 이때 정취보살상도 함께 소실되었다고 한다. 당시 정취암에서 정진하던 봉성당 치헌선사께서 효종 4년(1653)에서 9년(1658년) 사이에 화주를 구하고 사재를 내어 중건하였는데 현재의 목조관음보살좌상(정취관음보살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4호)은 효종 5년(1654)에 소실된 정취보살상을 재현하여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취암은 산신탱화로 유명한 절인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제작된 정취암산신탱화(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는 일반탱화와 같이 산신이 호랑이 옆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산신이 호랑이를 올라타고 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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